기초학문 살리기 '방법론' 논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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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기초학문의 위기는 이제 언급하는 것조차 진부할 정도로 심화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인문사회과학.자연과학 등 기초학문 진작을 위한 정책 대안들이 교수들에 의해 제기되고 있다. 이들 중에는 폭발력 있는 제안들이 적잖아 향후 이해 당사자들 사이의 뜨거운 논쟁을 예고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서울대 기초학문협의회(회장 유평근)는 교수회관에서 '기초학문 어디로 가야 하나'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어 기초학문 위기의 원인을 분석하고 해결방안을 내놓았다. 이어 기초학문육성위원회(회장 정대현)도 9일 오후 2시 이화여대 국제교육관 LG컨벤션 홀에서 '기초학문육성을 위한 정책 심포지엄'을 열어 나름대로 대안을 내놓을 예정이다.

이들 모임이 관심을 끄는 것은 그동안 수면 밑에서 논의돼 오던 ▶경영.법학.언론학.의학의 전문대학으로의 분리▶학부의 기초학문대학화 등 민감한 사안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지난달 기초학문협의회가 제안한 핵심적 대안은 '서울대를 기초학문 중점대학으로 만들자'는 것. 이날 윤이흠 교수(종교학).김하석교수(화학)에 이어 김세균 교수(정치학)는 "서울대를 '연구중점 대학원 중심대학'으로 육성.발전시킨다는 목표 아래 지나친 시장논리에 의해 사실상 응용학문 중심대학으로 나아가고 있다"고 비판하고, 학부를 기초학문 체제로 구축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아울러 법대.경영대.의대 등은 학부과정을 없애고 전문대학원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기초학문육성위원회가 9일 개최할 심포지엄에서도 유사한 방안이 발표될 예정이다. 이날 인문사회과학 분야를 발표할 박찬승 교수(충남대.한국사)는 1991년 총개설 학점 중 34%를 차지하던 기초교양과목이 2000년에는 17%대로 떨어졌다는 점을 제시하고, 이는 기초학문을 응용학문과 동등하게 경쟁시킨 학부제를 실시했기 때문이라고 강조한다.

나아가 그는 ▶기초학문 분야 박사들의 중등교육 진출▶학술서적을 공공도서관에 보급하기 위한 국가 지원▶시간강사의 처우 개선 등과 함께 ▶경영.신문방송.법학.행정학 등의 전문대학원화를 주장할 예정이다.

이들 제안의 공통점은 전문대학원을 전제한 기초학문 육성 방안이라는 점에서 이해당사자들의 반발을 사게 될 것으로 보인다.

특히 서울대를 기초학문 중점대학으로 해야 한다는 안에 대해 타대학들은 서울대 중심 사고라는 비판을, 서울대 법대.경영대.의대 등은 비현실적 대안이라는 저항을 하고 있다. 일부 기초학문 분야 교수들의 시각도 곱지만은 않다.

사회대 S교수는 "기초 체제는 학부에서 존재이유를 찾고 있는 만큼 행정.경영.법학 등의 전문대학원화는 비현실적인 대안"이라며,"차라리 기존 학과를 그냥 두고 통합과학적 분야를 발굴해 집중 지원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현실적 방안"이라고 주장한다. 서울대 인문대학 J교수는 "사회변화에 비춰 오히려 기초학문이 과잉상태"라고도 진단한다.

김창호 학술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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