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엄사 지킨 총경, 휴머니스트 차일혁을 노래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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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이탈리아에서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됐던 오페라 ‘카르마’. [후암미래연구소 제공]

1951년 5월. 빨치산 토벌대장 차일혁(1920~58) 총경은 전남 구례 화엄사를 불태우라는 명령을 받는다. 신록이 우거지는 봄, 사찰은 빨치산의 근거지가 되기에 적당한 곳이었다.

“절을 태우는 데는 한나절이면 족하지만 절을 세우는 데는 천 년도 부족하다.”

차 총경은 이 말과 함께 화엄사 대웅전 등의 문짝만 떼어내 소각하는 방안을 제시한다. 이렇게 하는 것만으로도 빨치산을 감시하고 사격하는 데에는 충분하다는 생각이었다. 차 총경은 잇따른 명령 불이행으로 감봉 처분을 받는다. 하지만 1998년 화엄사는 그를 기리는 공적비를 세웠다. 2008년 문화재청은 ‘문화재 지킴이’로의 공로를 기려 그의 아들에게 감사장을 전달했다.

민족주의자였던 차 총경은 1938~43년 좌익 계열인 조선의용대에서 활동했다. 일본과의 무력투쟁을 위해서였다. 해방 후 경찰로 활동하며 조선 공산당 총사령관인 이현상을 토벌하는 데 공을 세웠다. 하지만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도 인간에 대한 사랑은 바래지 않았다.

“이른 아침 들판에 나가 일하는 농부에게 물어보라. 자본주의가 무엇이고 공산주의가 무엇인지 아는 자가 몇이나 있겠는가. 지리산에서 사라져간 수많은 군경과 빨치산들에게 물어보라. 너희들은 왜 죽었냐고. 민주주의, 혹은 공산주의를 위해서 죽었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겠느냐.”

차 총경은 이 말과 함께 ‘적장’(敵將)을 정중히 화장했다. 충주경찰서장으로 재직할 때는 불우 청소년을 위해 직업학교를 설립하기도 했다.

오페라 ‘카르마’는 차 총경의 일생과 휴머니즘을 주제로 삼은 작품이다. 차 총경의 아들 차길진(63)씨가 작사를 맡았고, 작곡가 임준희씨가 곡을 붙였다. 전쟁과 사랑, 인본주의와 애국심이 빚어내는 장대한 드라마다. 김자경 오페라단은 이 작품을 지난해 6월 이탈리아 피에베 디 솔리고에서 공연했다. 6·25 전쟁 60주년을 기려 한국에서도 갈라 콘서트 형식으로 공연한다. 오페라 속 노래 16곡을 들을 수 있다. 18일 오후 8시 서울 서초동 예술의전당 콘서트홀.

 김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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