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휴대전화 커닝] "강남 대학생 사례비 1000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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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휴대전화를 이용한 수능시험 부정 사건으로 곤욕을 치르고 있는 광주광역시 교육청 관계자들이 23일 사무실 복도에서 얘기를 나누고 있다. 광주=양광삼 기자

휴대전화 커닝 사건에 이어 대리시험 사례까지 적발되면서 경찰이 수능시험 부정행위에 대해 전면수사에 나섰다.

경찰은 인터넷에서 소문으로 떠돌던 대리시험이 사실로 확인됨에 따라 금전적 대가를 요구하는 기업형 대리시험 조직이 있을 것으로 보고 수사 중이다. 광주에서 적발된 대리시험 의뢰자 주모씨는 "서울 강남 학원가에서 대리시험을 소개해 준다"며 "강남 대치동의 대학생은 기본이 1000만원이며, 지방 의대생.약대생은 200만~300만원을 받고 시험을 쳐준다"고 말했다.

◆ 대리시험 유혹=대리시험에 대한 소문은 이미 수년 전부터 입시철만 되면 떠돌았다. 인터넷과 학원가에는 대입 수능시험에서 고득점을 보장한다며 수험생들에게 거액을 요구하는 '수능 대리시험' 유혹이 광범위하게 유포돼 왔다.

최근에는 유명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수능 관련 카페를 개설, '연세대, 고려대 합격시켜 드립니다'는 광고를 내기도 했다. 이들은 대학생인 자신의 과거 수능성적을 공개하며 수험생들에게 접근했다.

인터넷상의 광고는 불특정 다수를 상대로 오로지 돈을 목적으로 한 것이었다. 이들은 대리시험 의뢰자에게 '부모님의 확약이 없으면 응할 수 없다'며 4000만원의 사례비를 노골적으로 요구하기도 했다. 재수생들이 주로 접속하는 인터넷 카페 '수능재수생모임'에서 한 재수생이 "대리시험을 쳐주겠다며 접근한 대학생과 대화했다"며 대화록을 공개했다. 그는 "수험표에 내 사진을 붙이면 가능하다. 300만원이면 된다"고 제안했다는 것이다.

대신 시험을 봐줄 수험생을 구하는 광고도 횡행했다. 일부 명문대생들에게는 "대리시험을 봐주면 후사하겠다"는 내용의 무차별적인 e-메일이 날아들기도 했다. 지난해에도 상황은 비슷했다.

지난해 대입 수능을 앞두고 '사례비로 몇 달치 과외비를 지급하겠다'는 내용의 e-메일이 돌아다니는가 하면, '함께 시험장에 들어가 화장실에서 정답을 문자메시지로 보내주겠다'는 기발한 방법까지 제시하는 광고도 등장했다. 이 같은 광고는 언제든지 현실이 될 수 있음이 이번 사건으로 확인됐다. 지난해에 고교 동창이나 동생을 대신해 대리시험을 치다가 대학생이 적발됐었지만 서로 잘 알지 못하는 관계에서 돈을 목적으로 한 범죄는 아니었다.

◆ 빗발치는 제보=네티즌들은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대리시험을 치르는 경우가 휴대전화 커닝보다 많다"고 지적했다.

'블루엔젤'이란 대학생은 포털사이트 네이버 게시판에 "가장 만연한 부정행위는 대리시험"이라며 "지난해 수능 원서를 제출하기 전 인터넷으로 어떤 사람이 '거액을 줄 테니 지방대 의대나 약대 갈 점수를 받아달라'고 부탁했다"고 밝혔다. 그는 "그 제안자는 브로커를 통해 내 사진으로 주민등록증을 위조해 원서를 내면 된다고 했다"고 말했다.

'서울학생'이란 네티즌은 "비슷한 얼굴형의 명문대생이 머리 깎고 목도리를 하는 등 비슷한 분위기로 사진을 찍으면 실제 인물과 구분하기 힘들다"며 대리시험이 만연해 있다고 주장했다.

기기를 이용한 부정행위에 대한 고발도 이어지고 있다. 중.고생이 많이 찾는 인터넷 사이트 베스티즈넷에는 "80만원이나 하는 소형 무전기를 구입해 재수생이나 의대생에게 돈을 주고 커닝을 모의했다"는 폭로 글이 올라 있다. 무전기 마이크가 가로.세로 1cm로 작고, 답을 듣는 사람의 무전기 이어폰도 갈색이어서 옷과 머리카락 속에 숨기면 들키지 않는다는 식으로 구체적이다.

◆ 경찰 수사=경찰은 인터넷에서 "돈을 주면 대리시험을 쳐주겠다"는 등의 글을 올린 네티즌의 인적사항을 파악하고 있다. 또 광주 이외 다른 지역에서도 부정행위가 벌어졌을 개연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청은 수사국 산하 사이버테러대응센터와 지능범죄수사팀을 동원해 온.오프라인상에서 유포되고 있는 부정행위 관련 소문들을 추적 중이다.

서울경찰청은 23일 사이버 범죄수사대를 중심으로 3개의 전담 수사팀을 편성했다. 서울경찰청은 "현재 인터넷에 뜬 수능 부정 관련 게시글 6건을 내사 중"이라고 밝혔다. 이 중 D 포털사이트에 등록된 2건의 대리시험 광고 글은 교육인적자원부가 최근 경찰에 수사를 의뢰한 것이다.

광주=김승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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