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홍의 정치보기] 김덕룡의 모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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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참신한 정치세력이 있습니다. 이제 그들이 나타날 차례예요. 그 토대가 마련됐어요."

민주당 소장파의 얘기가 아니다. 한나라당 김덕룡 의원의 말이다. 민주당 사태를 보고 그는 이렇게 진단했다. 동시에 처방이기도 했다. 남의 집 불구경 끝에 한 얘기치곤 너무 나갔다. 그러나 그는 그것말고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나서겠다고 했다. "구국운동을 하렵니다. 신풍운동이라고 해도 좋고요."

그는 이렇게 설명했다.

"온나라가 파워게임이에요. 이대로 가면 대통령선거 이후가 더 문제예요. 졌다고 승복하겠습니까. 이겼다고 제대로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 그날부터 또 다시 싸울 겁니다." 그는 여야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보다 큰 가치인 나라를 걱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국 탈당하고 신당을 하겠다는 건가요."

그의 대답은 담장을 넘는 구렁이와 같았다. 결코 '신당'이란 말을 쓰지 않았다. '탈당'얘기도 안했다. 결국은 그 얘기 같은데도. 그는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고 했다.

"여당이 저 지경인데, 야당을 싫어하는 사람도 많아요. 그들이 기대하는 건 변화예요."

그는 그 기대를 수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래서 그는 뜻이 같은 사람을 모으겠다고 했다.

"우선은 모임의 형태가 되겠지요." 정치적 뜻을 같이 하는 사람의 모임이 당이 아니던가. 그럼에도 그는 '당'이란 표현을 쓰지 않았다.

"金의원의 구상이 또 다른 파워게임은 아닌가요."

그는 강하게 부인했다. 나쁜 걸 고치자는 게 무슨 파워게임이냐고 반문했다. 그래서 이부영 부총재 얘기를 물었다. 얼마 전 그가 신당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공교롭게 두 사람은 친한 사이다.

"李부총재와 교감이 있었나요." 직접 얘기를 들은 적은 없다고 했다. 그러나 자기 생각과는 다르다고 선을 그었다.

"李부총재는 작은 정당이라도 하겠다는 생각 같습디다. 그러나 나는 꼬마 정당엔 관심 없어요. 내가 그리는 그림은 커요."

반(反)이회창 연대에 관심이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진 않았다. 그저 정치 개혁이란 말로 모든 걸 포장했다. 개혁 대상은 지역중심의 1인 정당. 한나라당도 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속내를 찔러봤다. "이회창 총재가 집권하는 것을 원치 않습니까." 그는 기다렸다는 듯 대답했다. "집권을 한다면 좋은 일이지요." 그러나 그의 말은 이어졌다.

"과거엔 군정 종식, 정권 교체만으로 의미가 있었지요. 그러나 이제 정권 교체만으론 의미가 없어요. 정치 개혁으로 이어져야 해요. 그러나 李총재에겐 그걸 기대하기 어려워요."

그는 李총재가 대통령 될 생각밖엔 없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 내에 金의원과 같은 생각을 하는 의원들이 많습니까." 대부분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겠다는 심정일 거라고 말했다. 듣기에 따라선 여러 해석이 가능한 대답이었다.

"YS-JP 신당에 관심이 있는 겁니까." "YS는 자신이 앞장서지는 않을 거라 하셨어요. 그 얘기는 맙시다."

金의원은 오래 전부터 생각을 다듬어온 듯했다. 이미 결심도 마친 것 같았다. 준비도 꽤 한 듯했다. 그러나 4년 전만 해도 당대 최고 실세 중 하나였던 그다. 그때도 지금처럼 싸우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때 생각하지 못한 것이 지금 생각난 이유는 무엇일까. 다함께 생각해 보자.

이연홍 편집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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