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책벌레로 살았어요" 미국서 석사 학위 받는 한비야

중앙일보

입력

‘바람의 딸’ 한비야. 그는 지난 1년간은 ‘책벌레’로 살았다.

지난해 복막염 수술을 받고, 곧장 보스턴 터프츠대 플레처스쿨 인도지원 석사과정(MAHA)에 입학했던 한씨는 24일 졸업식을 앞두고 있다. 이 과정은 1년 프로그램이다.

지난 1년간 아침 8시부터 새벽 1시까지 도서관에서 책과 씨름했다는 그는 “엉덩이와 싸움했다”고 털어놓았다. 3층 도서관 두 번째 좌석은 비어 있어도 “저기는 비야 언니 자리야” 라면서 아무도 앉지 않는 그만의 지정석이었다.

미국 유학생활 동안 이틀에 한 번씩 잠을 잤고, 지난 3일간은 아예 잠을 자지 못했을 정도로 억척을 떨었다.

‘학생 한비야’에 충실하기 위해 지난 1년간 언론과 인터뷰도 일절 미뤘던 그는 7일 뉴욕중앙일보와 첫 인터뷰를 통해, 세상과 소통했다.

인터뷰한다고 “일년 만에 처음으로 마스카라까지 발랐다”고 너스레를 떠는 한씨는 상아탑에서 배운 지식을 구구절절 풀어냈다. 생생한 현장, 거기서 주운 구슬을 꿰는 정책, 또 그것을 연구하는 학자. 이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는 금쪽같은 교훈을 다시 한번 절감했다고.

최근 발표했던 석사 논문의 제목은 ‘긴급 구호 현장에서의 급식’. 삶과 죽음이 오가는 긴급구호 현장에서 학교 급식을 통해 아이들이 ‘아, 일상으로 돌아왔구나’ 라는 안정감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모색했다.

터프츠대학에서는 평생 교류할 롤모델도 만났다. 그가 배운 교수들은 1년의 반은 현장과 교실에서 지내고 있는 한비야가 꿈꾸는 모델들이다.

플레처스쿨이라는 대장장이에게 신나게 두드려 맞았다는 한비야, 앞으로는 논다.

8월 한국으로 돌아가는 한씨는 길게는 1년까지 열심히 빈둥거릴 계획이다. 한씨는 “현재 육체·정신적으로 기진맥진하고 포화상태”라면서 “어디로 갈 지 나중에 결정하겠다”고 말했다.

책도 말랑말랑한 연애소설, 환타지만 읽고, 지리산부터 타면서 백두대간을 시작한다.

그래도 피가 끓는 한비야는 못 속인다. 논다면서도 계속 중국 타령이다. 올해 말에는 중국으로 가서, 중국말을 한국말처럼 배울 요량이다. 말로는 “놀면서 배우는 거야”라고 하지만 아직 자신도 모르는 꿍꿍이 속이 있는 것 같다.

52세, 한비야는 여자다. 지금도 짝을 찾는 여자다. 1년간 싸돌아 다니지 않고 ‘보스턴 정착민’으로 살면서 남자 하나 만나지 않을까 기대도 있었지만, 아직까지 소식 없다.

“지금도 쫓아다니는 사람 있어요. 근데, 연애는 가슴이 통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그래도 딸은 하나 갖고 싶다. 그래서 젊은이들을 그렇게 챙긴다.

학교서 만난 한인 학생들을 보면, 가슴이 벅차오른다. “우리 아이들 보면 가슴이 설레요. 정말 저 친구들이 크면 어떤 사람이 될까 너무 궁금하거든요.”

한비야가 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자기 책 읽고, 괜히 우리 아이 딴 짓 할까봐 가슴 졸이지 말란다. 엄마 아빠 눈에 조금 색다른 것 같아도 일단 밀어주면 확 피어버릴 우리 아이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아이들이요, 가슴에 숯불이 있어요. 옆에서 바람만 조금 불어주면 확 피거든요.”

내달에 미주한인청소년재단 행사 참석 차 뉴욕을 또 방문하는 한비야씨는 부풀어 있다. 이날 아이들에게 ‘지도 밖으로 행군하는 법’을 들려줄 참이다.

“나요, 그날 우리 애들한테 불화살을 쏠거에요.”

조진화 기자 jinhwa@korea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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