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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사람] 배상면 국순당 명예회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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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50여년 전통주 연구의 외길을 걸어온 배상면(80) 국순당 명예회장이 자신의 경영철학을 담은 '도전 없는 삶은 향기 없는 술이다'(랜덤하우스 중앙)를 펴냈다. 23일 출간된 이 책은 배 회장의 표현을 빌리면 "좌절에서 성공을 일궈낸 불굴의 인생.경영철학 에세이"다.

배 회장은 이 책에서 오늘의 자신이 있기까지 숱한 좌절과 실패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원가를 낮추려고 술 도수를 내리기도 하고, 주세를 탈루하려다 적발된 적도 있었다고 했다. 주먹구구식 경영과 부실한 제품 개발로 손해도 많이 봤다고 했다. 그러면서 "쓰라린 경험을 통해 나름대로 열가지 경영원칙을 세웠다"고 말했다. ▶정도(正道) 경영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다▶불가능한 일에 도전한다 ▶깨끗한 경쟁은 기업 경쟁력을 키운다▶불경기에도 팔리는 제품을 만든다 등이 그것이다.

배 회장은 1950년 경북대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뒤 52년 기린양조를 세워 주류 사업에 뛰어들었다. 전통주를 되살리겠다는 사명감에서 문헌 고증과 연구를 통해 92년 백세주를 개발했다. 백세주의 인기 덕분에 국순당은 지난해 세금을 제외한 순매출이 1312억원에 이를 정도로 성장했다.

그는 술 빚는 일을 천대시하는 사회 통념과 달리 두 아들과 딸에게 가업을 물려줬다. 국순당 경영은 맏아들인 배중호 사장이 맡고 있으며, 차남인 영호씨는 배상면주가를 차렸다. 딸 혜정씨는 배혜정누룩도가를 운영하고 있다. 배 회장은 배상면연구소에서 전통술 연구에만 전념하고 있다. 최근에는 맥이 끊긴 전통 포도주 제조법을 되살려 '쌀포도 막걸리'를 개발해냈다. 고령으로 청력은 떨어졌지만 술 맛을 감별하는 미각 만은 아직도 칼 같다는 게 직원들의 전언이다.

그는 "나도 쉬고 싶다. 그러나 전통 술이 코냑이나 마오타이처럼 세계적인 술로 인정받을 때까지는 일을 멈출 수 없다"고 말한다.

배 회장은 열여덟살 때 폐결핵으로 고생을 많이 했다. 운명을 탓하다 손금을 바꾼다며 면도칼로 손바닥을 긋기까지 했다고 한다. 지금도 손바닥에 자국이 남아있다. 그는 "운명은 미리 결정돼 있는 게 아니며 자신이 하기에 따라 바꿀 수 있다는 것을 그때는 몰랐다"며 "젊은 세대도 불경기.취업난에 절망하지 말고 계속 도전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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