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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수처, 반대하던 한나라당조차 필요성 제기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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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권 핵심 관계자들이 10일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의 필요성을 잇따라 제기했다. 한나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정몽준 대표는 “공수처 설립 문제를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같은 회의에서 정두언 지방선거기획위원장도 “공수처 등 검찰 개혁에 대해선 당이 전향적인 자세를 취해야 한다”고 했다. 이재오 국민권익위원장은 이날 발행된 정부 주간지 ‘위클리 공감’과 인터뷰에서 “별도의 사정기관이 필요하다고 본다”며 공수처 도입 쪽에 무게를 실었다.

검찰을 포함한 고위 공무원들의 범죄나 부패사건의 수사를 전담하는 공수처의 신설 문제를 검토하자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여기엔 정치적으로 민감한 수사나 검찰 내부 수사를 기존 검찰에 맡겨선 안 된다는 불신이 깔려 있다. 과거의 한나라당은 노무현 전 대통령의 대선 공약이었던 공수처 설립을 강력히 반대해 무산시켰다. 당시의 반대 이유는 “공수처가 집권세력의 권력을 강화하는 수단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엔 ‘스폰서 검찰’ 사건을 계기로 검찰에 대한 신뢰가 떨어졌고,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는 상황이므로 한나라당에선 공수처 신설을 검토하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한나라당에는 선거의 악재로 작용할 게 분명한 ‘스폰서 검사’ 파문을 그냥 덮고 갈 수 없는 만큼 어떤 식으로든 검찰 개혁을 해야 한다는 판단이 공수처 설립으로 모아지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청와대는 아직 신중한 편이다. 이 대통령이 연일 검찰 개혁을 강조하고 있지만 공수처 설립 문제에 대해선 긍정적이지 않다고 한다. 청와대 측은 여당 핵심 관계자들의 공수처 도입 주장에 대해 “개인 견해이지 당·청 간 조율을 거쳐 나오는 목소리는 아직 아니다”고 말한다.

한 고위 관계자는 “이명박 대통령은 새로운 조직을 만든다는 게 자칫 옥상옥(屋上屋)이 될 수 있고, 검찰의 힘만 빼는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는 점을 우려한다”고 전했다.

◆청와대는 상설 특검제 검토=청와대는 검찰의 기소독점을 제한하는 등 다른 차원에서 검찰을 개혁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특정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개별적인 특검법을 통과시켜야 하는 현재의 시스템 대신 특검제 운용에 대한 기준과 절차를 정해 특별검사가 상시적으로 활동할 수 있게끔 하는 ‘상설 특검제’ 도입이 비중 있게 거론되고 있다. 이 밖에 일반 사건 수사는 경찰이 맡고 검찰은 고위 공직 비리 등 중요 범죄에 초점을 맞추도록 수사권을 조정하는 방안, 검찰이 불기소 결정을 내린 사안에 대해 시민위원회가 추후 공소제기 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하는 방안 등도 검토 대상이다.

비리를 저지른 검사에 대해선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없도록 자격을 박탈하자는 아이디어도 청와대에선 나오고 있다 한다. 청와대 관계자는 “아직 어떻게 하자고 결정된 건 없으며, 정부·여당과 논의를 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공수처가 됐든 다른 방안이 됐든 청와대와 한나라당은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으므로 당·정·청의 논의는 머지않아 시작될 것이라는 게 여권 인사들의 관측이다.

 서승욱·정효식 기자



반색하는 민주당

“오랜 당론 … 검찰개혁의 핵심
조사만 하는 기관 되면 안 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한명숙 전 총리에 대한 검찰 수사 이후 검찰권 견제는 민주당의 화두였다. 그러던 중 ‘스폰서 검사’ 사건까지 터지자 민주당 사법제도개선특위(위원장 박주선 최고위원)는 지난달 23일 검찰 개혁 과제 22개를 발표했다. 그 안엔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설치가 포함돼 있다. 민주당이 구상하는 이 기구는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막강한 ‘독립기관’이다. 박주선 특위 위원장은 “무소불위의 검찰권력을 견제하고, 정치적 중립성을 보장해 국민의 검찰로 환골탈태하게 하는데 (고위공직자비리조사처 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 가운데 여권에서 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를 신설하자는 얘기가 나오자 민주당은 반색하고 있다. 우상호 대변인은 10일 논평을 통해 “공수처 설치는 민주당의 오랜 당론이며 우리가 오랫동안 주장해 왔던 검찰 개혁의 핵심 제도”라고 반겼다. 그러면서도 “공수처가 조사만 하는 기관으로 전락하면 공수처가 아니라는 점을 지적한다”고 했다.

공수처 설치는 민주당의 숙원이다. 김대중 정부는 검찰 개혁 일환으로 공수처를 준독립기관으로 설치하는 방안을 논의한 적이 있다. 이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공수처를 대선 공약으로 내걸고, 정부 출범 후에는 대통령 직속기구인 부패방지위원회 산하에 공수처를 두는 방안을 적극 추진했다. 그러나 당시 야당이던 한나라당이 “공수처를 부패방지위 산하에 두면 대통령 측근 비리를 제대로 수사할 수 없다”며 반대했다. 민주당 이강래 전 원내대표는 7일 “한나라당이 공수처를 추진하겠다는 뜻을 비치는데 다음 원내대표는 검찰 개혁을 확고히 했다는 평가를 받길 바란다”며 신임 박지원 원내대표에게 공수처 신설을 관철해 달라는 뜻을 밝혔다. 박 원내대표도 공수처의 필요성을 강조해 왔다.

백일현 기자



반발하는 검찰

‘공수처 신설 → 중수부 폐지’ 불만
"가장 큰 기능 거세당하는 것”

검찰은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와 관련, 공식적으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았다. “아직 결정된 게 아무것도 없어 할 말이 없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검찰 간부와 평검사 할 것 없이 최근의 분위기에 대해서는 불만과 걱정이 가득하다. 가장 큰 이유는 공수처 신설이 대검 중수부 폐지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대검 중수부는 검찰의 최고 수사부서라는 상징성과 함께 전국의 특수수사를 지휘해왔다. 이 때문에 ‘검찰의 가장 큰 기능을 거세당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수면 위로 나오지는 않지만 반발도 만만찮다. 익명을 요구한 한 부장검사는 “공수처 설치는 검찰의 힘을 빼겠다는 시도로밖에 보이지 않는다”면서 “계기는 최근의 스폰서 검사 파문을 들고 있지만 이전부터 정치적인 목적으로 계속돼 왔던 일 아니냐”고 주장했다.

그러나 검찰은 대놓고 맞서기 어려운 현재의 분위기도 잘 읽고 있다. 대검 고위 관계자는 최근 간부회의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외부의 반응은 비난의 수준이 아니라 분노에 이르고 있다”면서 “정작 검찰 내부에는 이런 위기 의식이 너무 없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대검이 자체적인 개혁안 마련에 속도를 내는 것도 그런 판단에서다. 

전진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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