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OS! 지방 상권] 상. <메인> 얼어붙은 시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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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대구 최대 도소매 시장인 서문시장. 이제 도매손님은 끊어지고, 서민층 소매손님이 간간이 오지만 그 드문 손님을 기다리는 상인의 마음은 애달프기만 하다.대구=조문규 기자

19일 오전 1시 남대문시장 앞 도로. 지난해 이맘때만 해도 지방에서 물건을 떼러 온 차들로 북적거렸던 이 도로는 지금은 몰라보게 썰렁해졌다. 시장 안을 들어가도 사정은 비슷했다. 아동복 상가에 물건을 사러 온 소매상이 눈에 띌 뿐 다른 곳은 한가했다.

남대문시장㈜의 백승학 부장은 "지난해까진 많을 때는 하루 300~400대의 차량이 지방에서 몰려왔는데 지금은 30~40대 정도가 고작"이라고 말했다. 남대문시장 상인들은 "지방 소매상들이 2~3년 전부터 서서히 줄기 시작하더니 이젠 새벽시장에 나와봐야 손님 구경하기도 힘들다"고 입을 모았다.

서울의 도매시장에서도 어렵지 않게 지방상권이 죽어가는 것을 감지할 수 있었다. 최근 산업자원부가 전국 154개 시.구의 중심 상권을 조사한 결과 92개 자치단체가 "중심 상권이 활기를 잃었다"고 답했다.

특히 수도권을 제외한 지역의 자치단체 92%는 중심 상권의 침체 수준이 심각하다고 호소했다. 이에 따라 전국의 도소매 재래시장도 심각한 타격을 받는 것으로 나타났다.

올 상반기 중소기업청이 5개 광역시와 5대 도의 재래시장 실태를 조사한 결과 인천.부산.강원도.충청도.전라도 시장 점포의 20% 안팎이 빈 상태로 방치되고 있었다. 중소 자영업자들이 주류를 이루는 재래시장과 지역의 소매상권은 국내 고용인구의 18% 정도를 차지하고 있는 서민경제의 중심축이다. 또 40대 이상의 조기 퇴직자들이 자영업 등으로 경제적 재활을 도모하는 곳이어서 중소 소매상권의 침체는 곧바로 서민경제에 주름살을 준다.

그러나 유통전문가들은 이러한 중소 소매상권의 붕괴가 단순히 불경기의 영향 때문만은 아니라고 지적한다. 자영업자들이 도매시장에서 물건을 떼다 파는 구멍가게식 소매점포들이 이끌었던 유통시장을 대형 할인점과 전문점 형태의 기업형 유통업체가 지배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실제로 1996년 유통시장 개방정책 이후 국내 대형 유통업은 급속히 성장한 반면 중소 유통업은 크게 위축됐다. 80년대부터 90년대 중반까지는 1~4명이 운영하던 영세 유통업체가 전체 유통업체 매출 비중의 60% 안팎을 차지했지만 지금은 40%대로 줄었다.

소매업의 위상을 따져볼 수 있는 소매액 판매지수 동향을 보면 편의점.대형 할인점.TV홈쇼핑이나 인터넷 쇼핑몰 등 무점포 판매업 등은 크게 높아진 반면 중소 유통업은 올 1분기 90.2로 뚝 떨어졌다. 소매액 판매지수는 2000년 소매판매액을 기준으로 소매업태별 판매액의 증감 추이를 나타내는 것으로, 이를 통해 소매업태별 성장도의 변화를 살펴볼 수 있는 지표다. 100보다 크면 사정이 나아진 것이고 100 이하면 그 반대다.

산업연구원 백인수 연구위원은 "일본의 경우 1970년대 유통시장을 개방하면서 30여년간 중소 자영유통업자 보호를 위한 대점법을 만들어 대형점의 출점을 규제해 유통시장 구조변혁의 충격을 최소화했다"며 "외환위기 직전 아무런 보호조치 없이 한꺼번에 유통시장을 개방한 후유증이 생계형 자영유통업자들의 붕괴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양선희.홍주연.이철재(산업부),서형식.황선윤(사회부)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chom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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