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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 낙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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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아담과 이브는 인류 최초의 공산주의자였다. 입을 옷이 없어 벌거벗었고, 먹을 거라곤 달랑 사과 한 개뿐이었다. 살 집조차 없었다. 그런 주제에 자기들이 낙원에서 산다고 확신했다.”

옛 소련 사회를 풍자한 우스개다. 실제로 1950년대 최고 지도자였던 니키타 흐루쇼프는 서방 정치인들을 만나면 “공산주의의 이상은 이미 성경에 계시돼 있다”고 빗대길 즐겼다. “낙원을 신에게 받는 게 아니라 인간의 힘으로 건설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라며 “장차 소련이 나머지 세계를 낙원으로 이끌고 나갈 것”이라고 으스댔다.

그러나 이상향으로 가는 길을 닦아야 할 계획경제 체제는 시작부터 삐걱댔다. 철혈(鐵血) 통치자 이오시프 스탈린이 레닌 사후 집권하기 무섭게 외화 벌이에 나서야 했을 정도다. 그의 지시로 100여 년 이상 공들여 구축한 에르미타주 박물관의 방대한 컬렉션을 극비리에 헐값으로 팔아 치웠다. 역설적이게도 이를 가장 많이 사준 건 미국 금융가 앤드루 멜론이었다. 렘브란트·라파엘로 등의 걸작 21점에 660만여 달러를 지불했다. 당시 소련 측 대미 수출액의 3분의 1에 달하는 액수였다(폴 존슨, 『모던 타임스』).

이런 실상을 숨기는 현란한 선전에 적잖은 서구 지식인마저 속아 넘어갔다. 영국 생물학자 줄리언 헉슬리는 기근이 절정에 달했던 32년 소련을 방문하고도 외국인용 식당만 둘러보곤 “스탈린이 10년 전이라면 불가능했을 풍요를 국민에게 선물했다”며 찬사를 쏟아 부었다. 유명 극작가 조지 버나드 쇼는 “한번 들어가면 누구도 나오려 하지 않는다”며 강제노동수용소의 ‘안락함’을 칭송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순 없는 법이다. 갈수록 심각해지는 경제난에 결국 환상은 산산이 깨져버렸다. 종주국 소련을 필두로 공산주의는 대부분 국가에서 간판을 내렸다. 철 지난 신화를 여태 붙들고 있는 나라는 사실상 북한뿐이다.

그런 북한도 요즘 형편이 심상치 않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성치 않은 노구를 이끌고 중국까지 수천 리 길을 오가야 했던 이유다. 정상회담에선 체면도 잊은 채 “투자 좀 해 달라”며 대놓고 손을 벌렸다. ‘쌀밥·고깃국 먹으며 비단옷 입고 기와집에서 사는’ 낙원은 없음을 또 한번 만방에 알렸다. 중국 경제의 발전상을 보고 돌아온 북한 지도부에 묻고 싶다. 혼자만의 헛꿈에서 깨어날 때는 도대체 언제냐고.

신예리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