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왜 동교동계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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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뭘 잘못했느냐-." 10.25 재.보선 참패에 따른 민심 수습책으로 민주당 내 소장 개혁파들이 권노갑(權魯甲)전 최고위원과 청와대 박지원(朴智元)정책기획수석의 정계 은퇴를 요구한 데 대한 동교동계의 반응이다. "민주화 투쟁을 한 것이 잘못이냐, 옥살이를 한 게 잘못이냐,국민의 정부를 수립한 것이 잘못이냐"는 반발이다.

그러나 權전최고위원이 주도하는 동교동계 구파들의 억울함 토로는 별 호소력을 얻지 못하고 있다. 그들의 발언에는 불만이 가득할 뿐 동교동계가 툭하면 국정 쇄신의 표적이 되는 데 대한 자성(自省)의 빛이 보이지 않는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국정 운영과 정권 이미지에 치명적인 부담이 되는 처지에 놓인 데 대한 자책(自責)도 찾기 힘들다.

동교동은 민주화 투쟁 시절부터 정권 획득까지 金대통령의 고난 가득한 정치 역정을 상징해 왔다. 그런 속에서 동교동계의 응집력과 집념은 남다른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자부심은 배타적 우월감으로 비춰지기도 했고, 끼리끼리 해먹는 '패거리 정치 행태'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특히 金대통령의 주요 인사 결정과 정책 판단에 영향력을 갖는 권력 내 비선(線)창구라는 인식은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쇄신파들이 "權전최고위원이 2선으로 후퇴했다지만 영향력은 여전하다. 權.朴씨를 통하지 않고는 되는 일이 없다"고 단정하는 것은 그런 사례다.

동교동계 출신 내부에서조차 동교동계 해체를 반대하면서도 "청와대 인사 정책이 잘못됐다" "청와대에 '저 사람은 안된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선 안된다"고 지적하는 상황이다.

이제 민주당 내 쇄신파와 동교동계의 갈등은 벼랑 끝까지 와있다. 어떻게든 정리해야 할 단계다.이런 꼴로는 국정이 제대로 굴러갈 리 없고 金대통령의 집권 종반기는 혼선과 표류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그렇다면 정리의 출발점은 왜 동교동계 구파 등 소위 실세들이 '민심 이반(離反)을 부른 상징'으로 거론되는지를 따져보는 데 있다. 권력형 비리 의혹에 'K'라는 익명이 오르내리고 실세들이 인사를 전횡한다는 여론의 의심은 야당 탓으로 돌리기에는 너무 커져 있다.

당내 불화에는 '믿는 사람에게만 자리를 주고, 신뢰한다'는 金대통령의 용인술에 대한 비난도 깔려 있다. 따라서 이같은 의심과 불만.갈등을 교통정리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金대통령의 몫이다.

동교동계도 자세를 가다듬어야 한다. "선거 패배의 책임을 우리에게 뒤집어씌우려 한다"는 음모론은 설득력을 얻기에 한계가 있다. DJ정권 출범으로 동교동계의 역사적 임무가 끝났다는 주장이 여론의 호평을 받고 있음을 기억해야 한다.

金대통령이 사면초가 상태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먼저 찾는 게 동교동계의 숙명이며 도리다. 당내에서 왕건(王建)이 위기에 몰렸을 때 대신 죽은 신숭겸(申崇謙)의 충절이 거론되는 이유를 따져봐야 한다. 金대통령은 읍참마속(泣斬馬謖)의 단호함으로 이런 문제들을 다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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