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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인적 쇄신 대통령 결단내릴 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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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0.25 재.보선에서 혼이 난 민주당이 아직도 제 갈 길을 찾지 못하고 있다. 내년 대선 후보를 빨리 결정하자는 조기 가시화론으로 촉발된 당내 갈등은 민심 수습방식의 논란을 넘어 동교동계 구파 대 반(反) 동교동계 구파의 대립양상을 띠어 왔다.

급기야 초선의원 10여명이 당정 인적쇄신의 해법으로 권노갑(權魯甲) 전 최고위원.청와대 박지원(朴智元) 정책기획수석의 정계 은퇴를 요구함으로써 이제 정치 사활을 건 권력투쟁으로 번지고 있다. 민주당 내의 이런 반목과 불화 탓에 공직사회 내에선 국정운영에 대한 불안감이 더해가고 민심은 현 정권과 더욱 멀어지고 있다.

여권의 내분과 표류는 자업자득이다. 그 원인은 먼저 동교동계 구파가 조기 가시화론을 들고 나온 데 있다. 선거에서 드러난 민심은 헝클어진 국정을 민생과 경제 살리기로 바로잡아 주고, 이용호 게이트 등 각종 의혹을 속시원히 파헤치면서 당정 수뇌부의 면모를 바꿔달라는 것이었다.

그런 요구와 달리 후보 조기 가시화론이 나온 것은 민심 불만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 한다는 의심을 사기에 충분했다. 민주당을 질책했던 대다수 유권자들은 "국정쇄신을 빨리 해달라는데, 엉뚱하게 대선후보 논의냐"고 분통을 터뜨렸다. 결국 조기 가시화론은 당내외 반발을 낳았고 제동이 걸린 것이다.

이런 장면들은 선거 참패 후에도 여권 핵심부의 시국 인식이 지극히 안이하고, 민심 수습에 나설 자세가 갖춰져 있지 않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겉으로는 민심을 하늘같이 받들겠다고 하고선 뒤로는 국면전환의 꼼수 찾기에 골몰한다는 인상을 준다. 국정쇄신과 관련해 무슨 기구를 만들자는 주장도 사태의 급박성을 모르는 안이한 발상이다.

여권이 내분의 소용돌이에서 벗어나려면 국정 위기와 민심 이반의 본질을 제대로 살펴야 한다. 그 핵심은 당정쇄신의 빠른 실천이다. 대다수 국민은 지난해 말부터 제기된 당정쇄신 문제에 김대중(金大中) 대통령이 시원스럽게 나서지 못하는 데 의아해하고 있다.

같은 사람의 자리만 바꿔놓은 지난 9월 당정인사를 보고 대다수 국민은 金대통령의 용인술에 크게 실망한 바 있다.

이제라도 다시 국정의 추진력을 얻고 레임덕 현상을 막기 위해선 인사라는 수단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이번 기회에 金대통령은 왜 동교동계가 끊임없이 분란의 진원지가 되고 있는지, 비리 의혹의 초점이 되고 있는지 그 이유를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청와대의 보좌기능이 제대로 가동되고 있는지, 민심의 흐름 파악에 나태하고 쇄신 자체를 꺼리는 참모들은 없는지 살펴야 한다. 민심은 정기국회가 끝나는 12월 말까지 기다리기엔 지쳐 있다.

金대통령은 국정 표류를 야기하고 있는 이런 문제들을 과감하게 정리해야 한다. 팔을 걷어붙인 결단이 절실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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