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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춘기 송유근의 가족생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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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중앙 송유근만큼 세간의 관심을 받으며 자라고 있는 소년이 또 있을까. 얼마 전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UST) 석·박사 과정에 최종 합격해 최연소 박사 탄생을 예고한 ‘천재 소년’ 송유근(13)을 만났다.

취재_지희진(객원기자) 사진_문소림(studio lamp)

3개월 만에 초등학교 졸업, 중·고등학교 검정고시 합격, 8세에 인하대 합격, 12세에 과학기술연합대학원대학교(UST) 입학…. 그야말로 파격적인 행보다. 송유근의 잰 발걸음을 지켜보고 있으면 그다음이 저절로 기대된다. 지난 2월, UST 석·박사 통합 과정에 합격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이 과정을 거치면 최단 3년 만에 박사 학위를 취득할 수 있다. 늘 그렇듯 응원과 우려의 목소리로 나뉘었지만, 어쨌든 다시 세간의 관심은 유근이에게 모아졌다.

유근이는 요즘 대전과 구리, 서울을 오가며 생활하고 있다. 수업을 몰아 일주일에 3일 동안은 어머니 박옥선씨와 함께 UST가 있는 대전에 머물고, 나머지 기간은 구리의 집에 머무는 식이다. 게다가 일주일에 한 번은 서울의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청강을 한다니, 일주일 내내 빠듯한 일정이다. 아버지 송수진(51)씨는 “본의 아니게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렸다”며 웃었다. 유근이의 친할머니가 투병 중이라 아버지는 구리에 머물며 병간호를 하고, 유근이도 일주일에 반은 집을 찾아 할머니와 같이 보낸다. 박옥선씨는 “요즘은 시어머니를 모시느라, 사실 유근이는 뒷전이다”며 “하지만 이젠 나보다 키가 더 커져서 마음이 조금 놓인다”고 했다.

잠시 집 안을 둘러보니 거실에 책이 빼곡하게 차 있었다. 송수진씨는 “유근이 책한테 집을 다 내어줬다”며 웃음을 지었다. 잠시 집을 비웠던 유근이가 그제야 들어왔다. 훌쩍 큰 키와 젖살이 빠진 모습이 한눈에 봐도 많이 자란 듯했다. 하지만 성숙해진 외모와 달리, 기자에게 꾸벅 인사를 하고 아버지 옆에 쭈뼛쭈뼛 서 있는 폼은 아직 어린애였다. 송수진씨는 “그래도 이젠 코밑에 수염이 거뭇거뭇하게 자라고 목소리도 변하기 시작했다”며 기특한 듯 아들의 어깨를 두드렸다.

예비 박사, 우주를 파헤치다

8세 때 인하대에 입학한 유근이는 3년 후 중퇴라는 결정을 내렸다. 최연소 대학생이었던 유근이가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들이 있었지만, 그 이유는 유근이에게 필요한 환경을 마련해 주기 위해서였다.

“한 학기는 잘 다녔는데 그 이후부터 아이가 학교에서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줄어들더라고요. 유근이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어 필요한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대부분의 교수들은 강의와 연구, 외부 프로젝트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유근이가 직접 지도를 받을 수 있는 기회가 적었어요. 그래서 유근이에게 가장 필요한 환경이 무엇인지 먼저 고민했는데, 연구 중심으로 학습할 수 있는 대학원 과정이 답이더라고요.”

그래서 찾은 곳이 현재 유근이가 다니고 있는 UST다. 교육과학기술부 소속의 교육기관인데, 29개의 정부 연구기관이 공동으로 설립한 대학교대학원이다. 연구원이 교수진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현장 중심의 강의가 이뤄지고 첨단 연구 시설도 갖췄다. 연구를 많이 하고 싶어 하는 유근이에게 꼭 맞는 곳이었다. 인하대 중퇴 후 학점은행제를 통해 학사 학위를 취득한 유근이는 이곳에 입학하면서 ‘컴퓨터공학’에서 ‘천문우주과학’으로 전공을 바꿨다. 이유를 물으니, 입자물리학을 좋아했는데 우리나라에선 연구 여건이 좋지 않아서 평소 관심 있던 우주과학 쪽으로 바꿨단다. 유근이는 한마디로 “재밌다”고 했다. 연구 주제는 ‘우주의 시작과 끝’인데 요즘에는 블랙홀을 기하학적으로 파악하고 있단다.

작년에 UST 석사 과정을 마친 유근이는 올해부터 석·박사 통합 과정에 들어갔다. 1학기는 4.21, 2학기는 4.39의 학점 평점을 받았고, 석박사통합과정선발위원회의 다면 평가에서도 높은 점수를 얻었다. “바라던 연구를 실컷 하고 있느냐”고 물었더니 아직 공부하느라 연구를 많이 하지는 못한단다. 그래도 “하고 싶은 공부만 할 수 있는 지금이 좋다”며 웃었다.

“유근이가 인하대에 입학했을 때가 여덟 살이었어요. 지금도 입학식 사진을 보면 너무 어려 보이는데, 그렇게 작은 아이가 어떻게 여기까지 왔을까 부모로서 기특하더라고요. 어린 나이에 검정고시를 보고 대학에 입학한 사례가 없어서 가족 모두 처음부터 부딪혀야 할 게 많았죠.”

세 가족의 꿈을 찾는 동행

어릴 적 유근이는 오히려 또래 아이들보다 성장 속도가 더뎠다. 박옥선씨가 39세에 낳은 늦둥이이긴 하지만, 돌이 될 때까지 뒤집기 한 번 안하고 가만히 누워 있었고, 말문도 늦게 트였다. 송수진씨와 박옥선씨 모두 초등학교 교사로 맞벌이를 했기 때문에 양쪽 집안의 어머니와 함께 살았는데, 할머니들 손에서 자라서인지 유근이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행동이 굼떴고, 유치원에서도 적응하지 못했다.

보다 못한 박옥선씨가 초등학교 입학을 앞둔 여섯 살 때, 수학을 미리 가르치기 시작했다. 초등학교 수학 교과서로 공부하다가 3개월 뒤에 고등학교 문제집을 던져줬더니 한 문제를 한 달 동안 끙끙거리더니 결국 풀어냈단다.

“아내가 유근이를 임신했을 때 전 ‘네가 나를 필요로 할 때가 있다면 뭐든지 하겠다’고 약속을 했어요. 그땐 ‘나랑 여행 가자고 하면 자주 가야지’ 하는 정도로 생각했는데, 여섯 살 때 유근이가 사고를 친 거죠(웃음). 그 이후부터 아내와 전 일을 그만두고 유근이를 도와줬어요. 그러고 보니 지금까지 참 긴 여행이 됐네요. 요즘은 누군가 제 직업을 물으면 ‘유근이 아빠’라고 대답해요(웃음).”

유근이는 집중력이 뛰어나 한 가지에 집중하면 시간을 잊을 정도로 몰입한다. 한번은 놀이터에 갔는데 유근이가 다른 아이들과 놀지는 않고 4시간이나 쭈그리고 앉아 있기에 봤더니 개미를 관찰하고 있었단다. 유근이가 ‘천재 소년’으로 유명해지면서 박옥선씨는 다른 엄마들에게 ‘어떻게 아이를 길렀느냐’는 질문을 많이 받지만, 항상 대답은 “아이에게 너무 신경을 못 써줘 미안하다”였다고. 초등학교 입학하기 전 3년 동안은 놀이공원 연간 이용권을 끊어 학원 대신 매일 놀이공원을 찾아 놀 게 한 것이 전부였다. 유근이는 놀이공원 지도를 읽으며 한글을 익히고, 놀이 기구를 탈 때 느낌을 기억하며 물리 이론과 수학 공식을 익혔다.

유근이는 초등학교를 가는 대신 집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수학과 물리학,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부부는 매일 아들이 궁금해하는 자료를 인터넷에서 찾고, 원서를 구해 주는 일을 했고, 유근이가 잠들면 밤 늦도록 물리학과 컴퓨터공학을 공부했다. 하지만 배우는 속도가 빠르고, 더 많은 지식을 원하는 유근이를 위해 송수진씨는 수학, 물리학 논문의 저자를 찾아다니기 시작했다. 영재를 위한 프로그램이 없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가 아이를 부탁하면서 개별 지도를 받아야 했다.

만나는 교수들마다 체계적인 학습을 위해 대학 과정이 필요하다고 했지만 초·중·고교 졸업장이 없는 한 유근이는 대학에 지원할 수 없었다. 검정고시 역시 13세 이하의 학생은 초등학교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규정이 있었다. 결국 부부가 두 번의 행정소송을 거친 후, 유근이는 마침내 초등학교 6학년에 월반해 졸업을 할 수 있었다. 졸업 후 그해 4월에는 중등 졸업 검정고시를 보고, 4개월 후에는 고등 졸업 검정고시를 통과했다. 송수진씨는 “검정고시 공부할 때 필요한 책을 쌓아놓으니 아이 키만 하더라”며 웃었다.

“유근이는 집중할 일이 생기면 한자리에 7~8시간씩 앉아 있을 정도로 엉덩이가 무거워요. 그런데 학교는 수업 40분에, 쉬는 시간 10분으로 정해져 있잖아요. 항상 공부하고 싶은 만큼 하고 쉬는 유근이한테 초등학교 수업은 잘 안 맞았죠. 입학하고 이틀 뒤에 유근이가 집으로 전화를 걸어서 ‘엄마, 쉬는 시간에는 뭐 해야 돼’라고 묻더라고요(웃음). 유근이에게 맞는 교육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죠.”

한 해에 초중고교 검정고시를 모두 통과한 뒤 인하대에 합격하자, 유근이에게 다시 이목이 집중됐다. 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우려 속에서 유근이는 대학 생활을 잘 해나갔다. 새벽까지 과제를 하고 다음 날 일찍 수업을 듣는 것이 힘들 때도 있었지만, 주변 사람들의 배려로 외롭지는 않았단다.

“명문대나 유학을 보내지 않겠느냐”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송수진씨는 유근이를 믿어주는 사람들을 생각한다고 했다.

“유근이가 여기 오기까지 도와준 사람들이 너무 많아요. 그중에서 특히 기억나는 분은 유근이가 8세 때 만난 지하철에서 바늘을 팔던 분이에요. 방송에 나온 유근이를 알아보고 떡 한 팩을 주시더라고요. 뭔가 주고 싶은데 딱히 줄 것이 없다면서요. 그분의 저녁이었을 텐데…. 유근이는 ‘내가 못한 공부를 네가 대신 해달라’는 의미가 담긴 것 같대요. 아직까지 이 떡값을 갚을 길이 없어요. 나중에 유근이가 훌륭한 과학자가 돼서 갚아야죠.”

그는 유근이에게 필요한 공부가 그곳에 있다면 몰라도 명성을 위해서 유학을 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덧붙여 유근이가 ‘천재 소년’으로 더 오래 살아남았으면 하는 것이 바람이란다. 그래서 유근이를 보고 비슷한 아이들이 따라올 수 있도록 새 발자국을 남기는 중이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아들을 진짜 천재로 생각할까. 그는 “천재이거나 아니거나 반반인 것 같다”며 웃었다. 자식을 판단한다는 것이 싫어 영재 판별 검사도 받게 하지 않았다는 그는 아직 유근이의 IQ도 모른단다.

“유근이나 남편이나 무언가 맞딱드리면 일단 하고 보는 타입이에요. 검정고시나 대학 입학 때도 둘이 ‘그냥 해보지 뭐’ 하더라고요. 그럼 나중에 뒤치다꺼리하는 건 저니까 전 혼자 열을 내고요(웃음). 사실 유근이가 힘든 기초 과학 공부를 한다고 해서 걱정되기도 해요. 하지만 가장 마음에 걸리는 것은 유근이가 나중에 더 커서 ‘왜 다른 아이들처럼 평범하게 키우지 않았느냐’고 말하면 어쩌나 그것이 늘 걱정이에요.”(박옥선)

사춘기 천재 소년과 우문현답

유근이는 13세의 대학원생이라는 점만 제외하고는 평범하게 자라고 있었다. 엄마 말을 곧잘 어기는 악동에다가 이것저것 호기심이 많았고, 같이 수업을 듣는 누나가 ‘유근씨’라고 부른 날에는 집에 돌아와 자랑을 하기도 한다. 낯을 많이 가린다는 유근이는 기자의 물음에 짤막하게 답했지만, 좋아하는 것에 대해서는 열심히 답하는 솔직한 성격이었다.

유근이에게 ‘박사’란
혼자 연구할 수 있는 면증. 라이선스요. 학위를 받기 위해서 누구에게 열심히 배우는 게 아니라, 혼자서 연구하면서 만들어낼 수 있는 거죠. 연구는 아직 알지 못한 것을 알아내는 거라서 연구를 할때마다 즐거워요.

연구는 실컷 하고 있나
아니요. 지금은 공부하느라 연구를 많이 하지 못해요. 대전과 구리를 왔다 갔다 하며 공부하느라 시간도 별로 없어요. 그래서 올해 들어서 좋아하는 드럼을 한 번도 못 쳤어요. 요즘에는 피아노도 치고 싶은데, 못 치고 있죠. 6년 전에 치고 쳐본 적이 없는데, 계이름이 자꾸 생각나요.

본인이 천재라고 생각하나
초등학교 때는 선생님 질문에 바로바로 대답하는 아이들이 더 천재 같아 보였어요. 전 한 문제를 풀 때도 몇 시간씩, 며칠씩 걸려 풀거든요. 지금은 제가 천재인지 아닌지 사실 잘 모르겠어요. 사람들이 그렇게 부르는 것도 거짓말 같아요.

사람들의 기대가 부담스럽지는 않나
아니요. 사람들의 시선에 많이 신경 쓰지 않아요. 그냥 전 저예요. 요즘은 엄마랑 같이 다니지 않고 혼자 다니면 잘 못 알아보던데요.

그럼 본인이 천재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인가
천재라고 생각하거나 존경하는 사람은 없어요. 아인슈타인 박사를 좋아하긴 하지만 그를 존경하는 건 아니죠. 아인슈타인이 갔던 길을 따라가고 싶진 않아요. 저만의 길을 가고 싶어요. 제 스타일대로요.

네이버 지식인에 ‘빅뱅이 일어나기 5분 전 무슨 일이 있었을까요?’라는 질문을 네티즌들에게 한 적이 있는데, 반대로 본인이 답을 한다면
그건 대학 1년 차 때 한 질문인데, 질문 자체가 완전히 틀린 거더라고요. 빅뱅이 생기면서 시간 개념이란 게 생긴 건데 빅뱅이 일어나기 전 5분이란 건 있을 수 없는 거였어요.

공부하는 시간 외에는 무엇을 하나
가끔 저를 괴물처럼 보시는 분들도 있는데, 저 역시 다른 사람들과 똑같아요. 게임을 하거나 DVD로 영화를 보죠. 음악 듣는 것을 가장 좋아하는데, 우리나라 아이돌은 잘 모르고 퀸이랑 비틀스를 좋아해요. 프레디 머큐리의 광팬이죠(웃음). 머라이어 캐리도 좋아하고요.

휴대폰이나 컴퓨터 사용은 안 하나
휴대폰은 없어요. 가지고 다녀야 할 필요를 별로 못 느껴요. 전화를 걸어야 할 때는 빌려 쓰죠. 인터넷은 별로 안 하고, 논문 검색할 때나 블로그 할 때 사용해요. 어머니가 인터넷에 욕이나 야한 동영상 같은 게 있다고 잘 못하게 하시죠. 그것 때문에 어머니랑 다투기도 해요.

용돈은 얼마 받나
얼마 받는 게 아니라 용돈이란 개념이 아예 없어요. 필요할 때마다 그냥 어머니 지갑에서 빼서 쓰고 있어요. 대학원에 와서는 통장에 제 이름으로 월급이 들어오지만, 제가 관리하면 오히려 복잡해지니까 안 해요. 사실 뭐 사고 싶은 게 없어서 별로 돈 쓸 일이 없어요.

못하는 것은 무엇인가
어려선 잘 뛰어다녔는데, 앉아서 공부만 하다 보니까 금방 힘이 달려서 축구를 잘 못해요. 대신 농구나 탁구는 잘하죠. 글 쓰는 것도 못해서 예전에 국어를 싫어했는데 요즘 영어 에세이를 많이 썼더니 그나마 나아진 것 같아요.

여자 친구를 사귀고 싶지는 않나
패스할게요(웃음).
“또래 여자 친구 이야기는 매일 하는데, 그래도 엄마가 제일 예쁘대요. 초등학교 다닐 때 반에 마음에 드는 애가 있다고 해서 봤더니 엄마를 닮았더라고요(웃음).”(송수진)

어떤 꿈이 있나
요즘에는 꿈이 계속 변하고 있어요. 인하대 입학하고 아무것도 모를 때, 어릴 때에는 우주와 자연의 원리를 찾는 초끈이론을 공부해서 하늘을 나는 자동차를 만들고 싶다고 했었죠.

그때는 어렸다고 생각하나
어렸을 때죠. 그다음에는 또 노벨상 타고, 존경받는 과학자가 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런데 생각해 보니까 혼자 영광을 차지하려고 했던 어리석은 순간이었어요.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탈레스는 2500년 전에 이미 ‘모든 물질은 무로 이뤄져 있다’고 했어요. 2000년이 넘게 지났는데도 물질의 근원을 모르는 것처럼 저도 그런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스티븐 호킹의『시간의 역사(history of time)』라는 책이 있는데, 전 ‘시간의 미래’(future of time)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어요. 2000년이 지나도 풀리지 않는 질문을 하는 게 제 꿈이에요.

송유근은 또래 아이들처럼 여자 친구를 묻는 말에 부끄러워했고, 좋아하는 음악을 말할 때는 눈이 초롱초롱해졌다. 하지만 꿈이 뭐냐고 묻자 거침없이 대답하는 모습은 당차 보였다. 사춘기를 지나고 있는 중이지만, 가족들이 늘 함께 있기에 공부 국가대표 송유근의 꿈은 더 성장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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