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형제 폐지 검토할 때 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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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여야 국회의원 1백55명이 사형제도 폐지를 골자로 한 특별법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서명 의원이 재적 의원 과반수인 데다 김수환(金壽煥)추기경도 최근 서울구치소를 방문해 사형수들을 만나 위로하며 사형제도를 없애야 한다고 밝혀 사형제 폐지론이 힘을 얻고 있다.

사형제 폐지는 오래 전부터 계속돼온 세계 공통의 논란거리다.나라마다 시대마다 결론이 달랐고, 지금도 의견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는 실정이다. 국제사면위원회에 따르면 현재 사형제도가 있는 나라는 미국.중국.일본.한국.사우디아라비아 등 80여개, 사형제도가 없거나 사실상 폐지된 국가는 1백여개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사형 폐지론의 확산이 세계의 전반적인 흐름이다. 해마다 평균 2개국씩 사형제를 폐지하고 있다. 특히 유럽연합이나 유럽회의는 사형제 폐지가 가입 요건이다. 유엔도 인권위원회를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사형제 폐지 운동을 펴고 있다.

사형제 폐지에 대한 찬반 논리는 모두 명분이나 이론적 뒷받침이 뚜렷해 우열을 가리기 힘들다. 폐지론자들은 '국가에 의한 살인행위 방지'와 사형제의 비인도성, 국가 교화 기능의 포기, 사형과 흉악범죄 발생률의 통계적 무관함, 오판(誤判)가능성, 정치적 악용 우려, 생명의 천부적 특성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폐지 반대론자는 폐지론을 '감상적 사고에 기초한 소박한 억지'라며 피해자 인권 보호와 응보성, 흉악범죄 억제 효과, 인면수심 범죄의 흉포화 추세, 사면권 남용, 오판.악용 가능성의 제도적 보완 등을 주장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사형제 폐지의 목소리가 새삼스럽지 않다. 사형제 폐지를 주장하는 민간 단체가 설립된 지 오래고 15대 국회에서는 이번과 같은 내용의 특별법이 제출됐다가 폐기된 적도 있다. 또 대법원(1987년)과 헌법재판소(95년)에서도 사형제 폐지를 심리해 모두 합헌으로 결론내렸다.

다만 헌재는 합헌 결정을 내리면서 '사형이 제도 살인적 성격을 갖고 있기 때문에 위헌.합헌 논의를 떠나 존치 여부에 대한 진지한 논의가 계속돼야 한다'고 밝혀 눈길을 끌었다.

특별법안의 제출을 계기로 사형제 폐지 논의를 공론화할 필요가 있다. 특히 우리나라는 6.25전쟁, 4.19혁명과 5.16쿠데타, 10월 유신과 12.12사태 직후 등 정치적 격변기마다 사형 집행이 급증해 정치적 악용 가능성을 걱정하는 소리가 높지 않았던가.

아직 반대의 목소리가 크게 남아 있고 부작용도 우려되는 게 현실이지만 그럴수록 치열한 토론을 통해 여론을 수렴하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아울러 당장 폐지가 아니더라도 형법의 16종을 비롯,국가보안법(45개).특가법(3백78개).군형법(70개) 등 사형이 규정된 대상 범죄의 축소와 사형 집행 요건 강화 등 사형제 폐지를 향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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