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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희 대기자의 투데이] 미국은 고립되는가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아프가니스탄의 백두대간인 힌두쿠시 산맥에 첫눈이 내렸다는 소식이다.

오사마 빈 라덴이 숨어들 법한 험준한 산악지대에 겨울이 오면 산악도로는 폐쇄되고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작전은 절망적으로 어려워진다.

미국은 지난 3주 동안의 공습으로 탈레반 정권의 기초 군사시설들과 알 카에다 훈련소들을 파괴했다. 그러나 미국은 빈 라덴을 생포하거나 사살하고, 알 카에다 조직 자체를 파괴하고, 파슈툰족 중심의 탈레반 정권 대신 아프가니스탄의 주요 부족이 고루 참가하는 친미정권을 세운다는 전략목표에는 접근하지 못했다.

한달 계속되는 이슬람의 금식기간(라마단)이 11월 17일 시작되는 것도 미국에는 혹한의 계절 못지않은 위협이다.

이슬람국가들은 금식기간 중의 전쟁을 이슬람에 대한 모독으로 받아들인다. 그래서 미국이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계속하면 우선 사우디아라비아와 파키스탄이 테러와의 전쟁의 국제연대를 이탈할 수도 있다.

*** 만만치 않은 아프간 작전

그렇다고 빈 라덴의 흔적도 찾지 못한 채 작전을 멈추면 작전 재개는 내년 봄에나 가능하다. 그때까지면 탈레반과 빈 라덴 일당은 전열을 충분히 가다듬을 수 있다.

작전의 중단과 재개로 전쟁이 장기화되는 것은 미국의 어느 누구도 바라지 않는 베트남의 악몽을 되살릴 것이다.

클린턴 정부에서 유엔대사를 지낸 리처드 홀브룩은 워싱턴 포스트에 쓴 글에서 이슬람세계를 상대로 하는 사상전(思想戰)에서 미국이 패배하고 있다고 경고했다.

이슬람세계가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는 전쟁의 승패를 좌우할만큼 중요하다. 그런데 홀브룩에 따르면 이슬람세계는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테러와의 전쟁이라는 부시의 정의(定義)보다 이슬람과의 전쟁이라는 빈 라덴의 주장에 더 끌린다고 말한다.

중앙아시아의 역사도 미국에 비우호적이다. 고대의 슈퍼파워 페르시아와 알렉산더대왕의 마케도니아, 8세기의 아바스조(朝) 아랍제국, 13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몽골과 티무르제국, 15세기 이후의 오스만 투르크의 모습은 걸프전쟁이 끝난 후 이 지역에 눌러앉은 미국의 이미지에 오버랩되어 탈레반과 빈 라덴의 선전효과를 높여준다.

16세기 아프가니스탄 지배가 페르시아에서 투르크계의 샤이바니제국으로 넘어갈 때 전략적 요충이었던 헤라트는 9개월 동안이나 저항했다. 칭기즈 칸은 13세기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가 험준한 산악지형에 기가 꺾여 빈손으로 철수했다.

영국은 1838년부터 1919년까지 세차례 침략전쟁을 치르고도 39년 동안 아프가니스탄을 간접 지배하는 데 그쳤다. 소련은 1979년 아프가니스탄을 침공했다가 10년 후 패주했다. 탈레반 전사들은 미국도 지난 2천5백년간 아프가니스탄을 단속적으로 지배한 슈퍼파워의 하나로 간주하고 선조들의 저항의 역사에서 영감을 얻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을 끝내는 조건은 분명하다. 빈 라덴 제거, 알 카에다 파괴,친미.친서방 정권 수립이다. 그 다음에 오는 것이 대대적인 경제지원으로 아프가니스탄을 정치.경제.사회적으로 안정시키는 것이다.

그러나 군사작전이 아직은 태산명동(泰山鳴動)에 쥐 한마리(鼠一匹)의 꼴이라 포스트-탈레반 정권 구성을 위한 협의도 진전이 없다. 탈레반 온건파의 참여를 고집하는 파키스탄과 탈레반을 제외한 세력으로 정부를 세우자는 러시아와 이란의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오리무중의 빈 라덴,다가오는 이슬람 금식기간, 탄저균 공포의 확산,가장 믿는 동맹인 영국에서 들리는 아프가니스탄 작전에 대한 비판여론은 11월 중순부터 모든 사정이 미국의 국제적인 고립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바뀔지도 모른다는 걱정을 낳는다.

*** 전선.목표 등 구체화 필요

테러의 근절은 글로벌한 장기적인 목표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은 그 목표에 이르는 하나의 과정이요, 수단이다. 구체적으로는 미국에 대한 테러공격을 응징하고 가장 잔인한 테러 진원지를 제거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라크로 전선을 확대하고 싶은 충동을 누르고 전선과 목표를 한정할 필요가 있다.

부시정부는 목표와 수단,그리고 이들 두개의 단계를 명확하게 구분하여 포스트-탈레반의 국제협력의 틀과 아프가니스탄의 정상화 구상을 제시하면서 균형 잡힌 반테러 정책과 전략을 실천해야 한다. 작전의 성격과 범위가 모호하면 성공적인 국제연대를 기대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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