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시평] '3金 정치' 변혁의 전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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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정치적 대변혁이 있기 전에는 항시 그 전조(前兆)를 알리는 크고 작은 사건이 선행돼왔다. 우리나라의 대표적 병폐가 뭐냐고 물으면 대부분이 '정치'라고 답한다.

그리고 그 원인으로 지역주의와 '3金정치', 그리고 정치인의 자질을 거론한다. 그래서 내년 대선을 계기로 이러한 병폐가 치유되는 일이 생긴다면 역사는 이를 '한국정치의 변혁'이라고 평가할 것이다.

최근 암울한 현실정치의 장에서 미래의 희망을 알리는 변혁의 전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래서 '3金의 역할'을 다시 논하게 된다.

'3金정치'의 종언과 지역주의 해체를 암시하는 첫 조짐은 'DJP 연합'의 파기였다고 보면 된다. 국정운영상 불가피했다는 '공조합리화'론은 '공직 나눠먹기'이미지론에 의해 '명예훼손'만 당하다가 결국 결딴난 것이다.

원초적으로 정당이념이 아닌 지역주의에 기반을 둔 정당간의 'DJP연합'이 깨진 것이니 희망의 징조다.

***지역주의 성향 개선 조짐

두번째 조짐은 YS.JP의 '반DJ.반昌'연대를 마음에 둔 신당 창당계획과 포부의 좌절기미다. 김영삼(金泳三)전 대통령은 최근 "대통령을 지낸 사람이 신당 창당에 앞장설 수가 있겠느냐"고 했다고 한다.

아마 'YS진영'의 수하 지역정치인들의 '영원한 의리'에 문제가 생겼거나, 지역주의 민심에 대한 JP의 기대가 여의치 않은 결과 같다. 아니면 '국가지도자로서의 위상과 품격'을 주문하는, 한때의 YS 지지층의 바람을 바로 읽은 결과라면 이 또한 희망의 징조다.

세번째 조짐은 며칠 전 실시된 재.보선 결과다. 이번 선거에서 야당이 이겨서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출신성에 기반한 '고정적 지지표'가 강세라고 믿었던 서울 두 지구에서의 민주당의 참패다.'지역주의'의 선거효용성에 대해 일대 타격을 가했다는 사실이다.

현 호남권에서조차 정권의 도덕성이 지역성보다 중요하다는 여론이 앞서는 상황이니 이번 선거결과는 의미심장하다.

한국 지역주의 병폐를 연구해온 사람들 모두가 정치지도자들의 사적(私的)인 정치적 목적이 지역주의를 부채질해왔고, 지역성을 선거동원의 도구로 삼아왔다고 주장한다.

그래서 '3金청산'을 거론한다. 최근 들어 대권출마 의향을 밝히는 정치인들이 우후죽순처럼 발기하고 있다. 문제는 이들 거의가 지역주의적 배경과 '3金 눈치보기', 그리고 '꼼수 찾기'에 연연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바른 大選 준비 지원해야

이번 재.보선 과정을 지켜본 시민들은 이렇듯 혼탁하고 부패한 선거가 내년 대선에서 반복될 때, 선거자체는 물론 나라꼴이 온전할 수 있겠느냐고 걱정한다. "선거는 이기고 봐야한다"는 데 집착해 '혼탁'을 방치한 정부와 이를 조장해온 여야 정치인의 행태에 대한 비판은 매섭다.

그렇기에 국민적 수준에서 먼저 내년의 '바른 대선'을 생각하고 준비를 해야만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더 나아가 '바른 대선'을 염원하면서 '3金씨'의 향후 역할에 관심을 갖는 것이다. '3金'이 할 일은 아직도 많다.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은 무엇보다 내년 대선에서 금권.관권이 판치지 않도록 법적.제도적 장치를 완비할 책임을 져야 한다. 정치권의 선진 선거문화 정착을 위한 정화와 교육에 힘을 쏟아야 한다. 당이 아무리 어려워지더라도 더 이상 '당수의 역할'이 대통령의 의무영역 위에 자리잡혀서는 안될 것이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나라의 장래문제를 사적 관계의 '한(恨)과 섭섭함'으로부터 구분하고, 전직대통령으로서 바른 대선을 위해 조용히 기도하는 것만으로도 큰 공헌을 함이다. 김종필(金鍾泌)총재가 언젠가 언급했던 '상선약수(上善若水.최상의 선은 물과 같다)'의 '약수(若水)'정신을 남이 아닌 자신의 정치세계에 적용할 때가 됐음을 깨달으면 된다.

내년 대선 과정에다 다시 지역구조적 파행의 씨를 심을 생각을 접는다면 이는 엄청난 공헌일 것이다. 나는 국민의 정치의식과 정치문화 수준이 점차 선진화돼 가고 있다고 믿는다. 정치적 지역주의 청산을 향한 기운이 호남권에서 시작해 영남권으로 전이되고, 다시 충청권으로 뻗어나갈 조짐이 서서히 보이는 것 같다.

3金의 바람직한 역할에 힘입어 내년 대선이 '대변혁'의 계기가 될 수 있다면 국민에게도, 3金 자신에게도 얼마나 좋은 일인가.

金東成(중앙대 교수 ·국제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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