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줄 새는 4대강 사업 보상금] “파이프 꽂으면 10~16배 남는 장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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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낙동강 15공구인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일대 하천 부지에 불법 설치된 비닐하우스를 공사 관계자가 가리키고 있다. 현지 농민은 물론 외지인들까지 가짜 비닐하우스를 설치해 거액의 보상금을 타냈으나 당국은 인력부족 등을 이유로 단속이 소홀하다. [송봉근 기자]

7일 오후 경남 김해시 한림면 시산리 낙동강 제방. 강과 제방 사이 하천 부지에는 비닐이 덮인 하우스와 철제 파이프만 설치된 하우스가 즐비하다. 하우스 사이에는 강에서 퍼낸 흙을 쌓아 두는 준설토 적치장이 있고 굴착기·덤프트럭이 바쁘게 오가고 있었다. 4대 강 살리기 사업의 낙동강 제15공구다.

제방 바로 아래 하우스에는 잡초만 무성할 뿐 농작물이 보이지 않는다. 하우스 옆에는 철거를 촉구하는 경고판이 서 있다. 15공구 시공사인 현대건설 안용국 공무부장은 “보상금을 타기 위해 하우스용 철제 파이프를 꽂았으나 불법임이 드러나 보상을 받지 못한 채 방치된 하우스들”이라고 설명했다.

차를 타고 하천 부지 안으로 들어가자 배추 밭이 나온다. 밭에도 하우스용 철제 파이프가 촘촘히 꽂혀 있다. 여러 동을 이은 연동 하우스다. 한쪽에는 수주일 전에 씨를 뿌린 듯 배춧잎이 7~10㎝ 크기로 자라 있다. 그 옆 하우스에도 2~4㎝ 정도 자란 배추가 잡초와 함께 방치돼 있다. 경남경찰청에 따르면 4월 말 현재 보상금을 받기 위해 이 일대에 가짜 하우스를 설치했다가 보상금을 받지 못하고 방치한 하우스가 320여 개 동에 이른다. 낙동강 살리기 사업과 관련, 경남에서 지금까지 허위로 보상금을 타낸 사람은 85명, 금액은 27억6700여만원에 이른다. 이 중 11명은 구속됐다. 낙동강 부근에서만 이 정도이고 4대 강 전체로 보면 이보다 훨씬 많은 액수의 세금이 새 나갔을 가능성도 있다는 얘기다.


◆속임수도 가지가지=지난해 초 낙동강 살리기 사업이 구체화하면서 하천 부지에 설치된 시설물(비닐하우스·농막 등)과 시설물에 딸린 농자재(차광막·부직포 등), 작물(영농 손실 2년치)을 보상한다는 소문이 퍼졌다. 먼저 사업이 시작된 양산 물금, 김해 대동면, 부산 등에서 건너온 소문이다.

그 뒤 외지인들이 건너와 한림면 시산·가산리 일대 주민들로부터 경작권인 ‘점용허가권’을 사들인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외지인들은 위장전입을 하거나 아는 농민과 친척 명의로 경작권을 사들였다. 실제 농사를 짓고 영농에 사용되는 지장물이어야 보상금을 받지만 여러 속임수가 동원된 것이다.

외지인들은 인부를 동원해 며칠 만에 대규모 하우스를 뚝딱 지었다. 현지 농민도 허위 보상금을 타기 위해 하나 둘 가세했다.

서모(61·농업·구속)씨는 지난해 6월 말~7월 중순 경작을 허가 받은 1만9248㎡(약 5800평)에 있던 개별하우스 5개 동을 뜯어내고 면적이 넓은 연동 하우스 5개 동을 설치했다. 같은 해 8월 말 조사를 나온 감정평가사에게 “철제 파이프를 재설치한 것이지 면적이 늘어난 건 없다”고 속여 지난해 11월 보상금 2억9900만원을 받아 챙겼다. 내친김에 그는 더 큰 ‘눈먼 돈’에 침을 흘렸다. 그는 부인 명의의 경작권이 있던 농지에 비닐하우스 28개 동을 추가 설치했다가 (이전에) 불법으로 보상금을 탄 사실이 드러나 구속됐다.

외지 투기꾼들은 보통 영농손실보상금만큼의 금액(3.3㎡당 1만2000원 안팎)을 주고 점용허가권을 사들인 뒤 하우스용 철제 파이프를 대거 설치했다. 보통 100만원을 들여 100mX4m짜리 하우스 1개 동을 지으면 농자재 이전·취득비 조로 1000만원의 보상금을 받기 때문이다. 연동 하우스 1개 동은 이보다 벌이가 좋아 1600만원 정도를 받았다. 10~16배 남는 장사를 하는 것이다.

부모의 경작권을 이어받았으나 농사를 짓지 않던 외지인도 이장의 영농사실확인서를 받아 임대농민의 영농손실보상금(2년치)을 가로챘다. 그야말로 ‘눈먼 돈’ 쟁탈전이 벌어졌던 것이다.

◆실종된 단속=국토해양부와 경남도는 지난해 2월 김해시에 공문을 보내 합동단속반을 편성하라고 지시했으나 시행되지 않았다. 현재 김해시의 4대 강 사업 관련 단속인력은 공무원 1명과 청경 4명이다. 이들이 낙동강을 포함한 김해지역 31개 지방하천을 단속하고 있다는 게 김해시 관계자 말이다. 보상 업무 담당 공무원 3명도 서류 처리에 매달려 단속은 어렵다. 경남경찰청 차동곤(48) 경위는 “선거를 앞두고 행정기관에서 표를 의식해 강력 단속하지 않은 잘못이 있다”며 “지방자치단체 예산으로 보상했다면 이런 일은 적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사실상 보상금 사기를 행정관청이 방치한 셈이다.

◆대책=토지주택공사의 한 관계자는 “시급한 국가사업의 경우 보상 전부터 지역 실정에 밝은 지자체·경찰·감정평가회사 등이 합동단속반과 보상반을 만들어 가동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보상 업무 협의를 위해 주민들로 구성되는 대책위원회나 마을 이장의 확인서만으로 경작 사실을 확인하는 제도에 시민단체 관계자들을 참여시키거나 여러 명의 확인서를 요구하는 방안도 필요하다. 경남경찰청 윤창수 정보과장은 “정밀 보상 조사를 위해 관련 법률을 개정해 감정기관이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게 하는 등 강제 조사권을 부여하고 부정 수령 때는 보상금의 수배를 추징하는 등 처벌 강화가 필요하다”고 제안했다. 

김해=황선윤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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