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기후보 조기선출론' 여권 파워게임 시작됐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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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여권에서 제기된 '차기 대선후보 조기 선출론'이 민주당 내 계보간의 파워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28일 "10.25 재.보선 패배 뒤 권력 내부의 쟁점이 '차기' 논의로 급격히 이동하고 있다"고 전했다. 당 총재인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을 의식해 그동안 자제해 왔던 민감한 현안들이 분출하고 있는 것이다.당내의 차기 후보군은 물론 동교동계 신.구파, 초.재선 그룹까지 뒤엉켜 세(勢)대결의 조짐도 나타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한광옥(韓光玉)대표가 지난 26일 청와대에서 金대통령과 독대해 보고하면서 "후보 선출시기와 지도체제,총재.후보 분리 문제 등에 대한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한 사실이 공개되면서부터다.

대중 지지도가 높은 편인 이인제(李仁濟).노무현(盧武鉉)최고위원은 "지방선거(내년 6월) 전인 내년 3~4월에 차기 후보를 정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여기에 권노갑(權魯甲)전 고문이 좌장인 동교동계 구파가 적극 동조하는 양상이다. 이훈평(李訓平).조재환(趙在煥).박양수(朴洋洙)의원 등이다.이들은 "金대통령이 총재직을 내놓는 방안까지 검토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차기 경쟁에 뒤늦게 뛰어든 한화갑(韓和甲).김근태 최고위원은 부정적이다. 특히 金위원은 "인적 쇄신 요구를 덮기 위한 미봉책"이라고 조기전대론에 반대했다. 동교동계 신파를 이끄는 韓위원의 주변에서도 "특정인과 특정 정파를 위해 후보선출 시기를 결정해선 안된다"며 경계심을 드러냈다.

27일 비공개리에 소집된 당 최고위원 간담회에서도 이 문제가 쟁점이 됐다."재.보선에 나타난 민의를 수렴하는 차원에서 당정개편을 즉각 단행해야 한다"(김근태.한화갑.정대철.김기재 최고위원)는 '선(先)민심 수습'의견에 대해 "두달 전에 당정을 개편해 지금 할 수 있는 게 없다"(이인제 위원)는 의견이 대립했다.

결국 전당대회 소집 시기를 둘러싼 논쟁은 당내 최대 계보인 동교동계의 신.구파 분화를 앞당기고, 차기 예비후보 진영간의 합종연횡을 촉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동교동계 구파와 대립해 왔던 '바른 정치모임'과 초선 모임인 '새벽 21'(회장 朴仁相의원)도 "후보 조기 가시화는 10.25 재.보선 참패에 따른 국정쇄신과 당정개편 요구를 호도하기 위한 것"이라는 등 비판이 적지 않다.

그러나 金대통령의 의중을 잘읽는 韓대표와 정균환 총재특보단장은 동교동계 구파의 조기 선출론을 적극 제지하지 않아 미묘한 파장을 던지고 있다.

이양수 기자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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