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최고 단독 인터뷰] "공정 경선땐 아무도 탈당 못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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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10.25 재.보선이 민주당의 참패로 끝나면서 여권 내부에선 민심 수습을 위한 제안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는 민심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할 수밖에 없는 여당의 대선 후보군에게 정국 수습방안을 들어보기로 했다.

그 첫째로 이인제(李仁濟)최고위원을 만났다. 李최고위원은 재.보선 참패에 대해 "민주당과 정부에 대한 실망과 불신, 민심 이반 현상을 있는 그대로 수용하겠다"며 여권의 자성을 촉구했다.

李위원은 그러나 "내년 대선은 김대중(金大中)대통령의 업적을 놓고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후보들이 자신들의 비전과 희망을 놓고 겨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한나라당 이회창 총재에게 진다는 생각은 꿈에도 하지 않았다"면서 "이 말을 그대로 써달라"고 자신감을 보였다. 인터뷰는 지난 27일 오후 서울 여의도 李위원 캠프 사무실에서 두시간 동안 진행됐으며, 인터뷰가 끝난 뒤 그는 "내가 할 얘기는 다 했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재.보선을 지원하면서 민심이반을 실감했나.

"무엇보다 경제난에 대한 불만이 심각했다. 의약분업과 교육정책.외교문제 등에 대해서도 불평이 많았다."

-현 정권의 집권기간 중 가장 잘못한 정책과 잘한 정책을 하나씩 꼽으라면.

"국민에게 큰 불편과 고통을 줬던 것은 의약분업 정책이고, 외환위기 극복과 남북화해의 물꼬를 튼 점은 평가받을 대목이다."

-최근 여당은 선거마다 진다는 얘기를 듣고 있다. 내년 대선도 희망 없는 것 아니냐.

"(크게 웃으며)이번 선거로 민심의 생생한 현주소를 알게 된 것은 오히려 큰 행운이다. 내년의 지방선거와 대선은 지금과는 전혀 다른 상황에서 치러질 것이다."

-여권의 차기 대선후보는 언제쯤 뽑아야 하나.

"한광옥(韓光玉)대표가 金대통령을 만나 이런 문제에 대한 논의의 물꼬를 트겠다고 한 것은 잘된 일이다. 연말까지는 당의 지도체제를 어떻게 할지, 후보 선출은 언제 할지 결정돼야 한다."

-후보 선출을 앞당겨야 한다는 의미인가.

"내년 지방선거는 대선의 전초전이다.여권은 이 선거를 통해 연말 정권재창출로 가는 길을 열어야 한다. 그러려면 金대통령과 후보 중 누구의 깃발로 선거를 치러야 할지는 상식적으로 생각해보면 알 일이다."

-1992년 민자당 김영삼(金泳三)대표는 노태우(盧泰愚)대통령에게서 후보를 쟁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후보를 쟁취할 것인가, 아니면 '김심(金心.金대통령의 마음)'에 의존할 것인가.

"金대통령이 중립을 지킬 것으로 확신한다."

-金대통령이 李위원이 아닌 사람의 손을 들어줄 수도 있지 않나.

"그런 일은 절대 없을 것이다. 과거 정권은 누구든 후보로 내세우면 이긴다는 교만에 빠져 무슨 심(心)이다 하는 얘기가 있었지만 이젠 시대와 상황이 달라졌다."

-李위원이 지난 대선 때 신한국당 경선 결과에 불복해 탈당한 것을 아직 문제로 삼는 사람들이 있다. 내년 경선에서 지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공정한 경선이 이뤄졌는데도 탈당한다면 그 사람은 한 점(點)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공정한 경선이 이뤄지지 않으면 결단을 하겠다는 뜻인가.

"그런 걱정은 하지 마라. 경선이 공정하게 치러지지 않을 도리가 없다."

***후보.총재 분리하면 혼선

-당내에서 개혁후보 연대론 등이 나오는데.

"개혁이란 이름을 상표로 사용해 차별화하려는 사람들은 깊이 반성해야 한다.1등을 제치고 2.3.4등이 연대해 그 중 한명을 대표선수로 보내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다."

-당권-대권 분리론을 수용할 것인가.

"내가 후보가 돼서 선거에서 승리하면 선거 전에 당 총재직을 겸직했더라도 더이상 총재 자리에 앉아 있을 필요가 없다. 하지만 선거과정에서는 후보와 총재가 다르면 오히려 혼선을 준다."

-여권의 대선 후보가 되면 다시 세대교체론을 내세울 것인가.

"더 발전된 주장을 내세우려고 연구 중이다. 이번 대통령선거는 金대통령의 업적에 대한 평가나 심판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라 후보들이 미래에 대한 비전과 희망을 내걸고 승부하는 것이다."

-야권에선 金대통령의 당적 이탈과 중립적인 선거관리를 요구한다. 노태우.김영삼 전 대통령도 임기 말기에 당적을 버렸지 않나.

"盧.金 전 대통령은 공정한 선거나 중립적인 관리를 위해 당적을 이탈한 게 아니다. 당적이탈을 하느냐 마느냐라는 형식적인 논쟁은 불필요하다."

-당내에서 '이인제의 신뢰도'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는 1997년 대선 때도 재벌해체와 정경분리, 서민 중심의 국정개혁, 냉전체제 해체를 위한 남북관계 개선을 주장했고 추구하는 방향과 목표가 같기에 현 정부에 동참한 것이다. 당에 적자(嫡子)가 어디 있고 서자(庶子)가 어디 있나. 한강물에서 남한강물과 북한강물을 가르려 하는 것은 어리석다."

-하지만 후보가 된 뒤에도 金대통령과 같은 입장을 보인다면 득표력이 있겠는가.

"물론 차별화는 불가피하다. 차기후보가 현 대통령의 정책을 그대로 고수한다는 건 상식에 안 맞는다. 봉건시대에 부자간 왕위를 세습해도 서로 다른 정책이 나오는 것 아니냐."

-한화갑(韓和甲)최고위원은 내년 선거가 다자(多者)구도로 치러질 것으로 예상했는데.

"나는 양자구도로 갈 것으로 본다. 야권분열로 어부지리를 얻을 수 있다는 전제하에 전략을 세우는 것은 어리석고,실제로 그렇게 되지도 않을 것이다."

***권노갑씨와는 신뢰 관계

-동교동계 좌장인 권노갑(權魯甲) 전 의원은 李위원을 지지하기로 했나.

"權전의원과는 정치적으로 이해하고 신뢰하는 관계일 뿐이다."

-연말 당정쇄신의 폭과 규모는.

"최종 승부를 거는 심정으로 여러 곳에서 좋은 의견을 수렴해 전문성이 강하고 신망받는 인사들로 일하는 내각을 만들어야 한다."

-이한동(李漢東)총리도 개편대상인가.

"누구도 예외가 없다."

-전직 대통령들을 평가한다면.

"(한참 뜸을 들인 뒤)그것은 후세 역사가나 국민의 몫으로 남기는 게 좋을 것 같다."

만난 사람=김종혁 정치부차장

정리=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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