웃지 않는 남자가 웃던 날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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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10면

다이고는 웃지 않는 남자다. 원래부터 웃음이 어울리지 않는 얼굴이라고 할까. 전체적인 인상은 소설가 발자크를 닮았는데 더 고집스럽고 심술궂고 그러면서도 박력 넘치는 얼굴이다. 가만히 있어도 왠지 화가 나 있는 것 같아서 ‘아무래도 저 사람과는 친해지기 어렵겠군’ 하고 단념하게 만드는 그런 얼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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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고는 내가 일했던 야키니쿠 식당의 사장이다. 식당일이 처음이라 서툰 나를 그는 친절하게 가르쳐 주지 않고 가만히 지켜보기만 한다. 그러다 도저히 못 봐주겠다 싶으면 곁으로 와서 직접 시범을 보인다, 고 하면 좋을 텐데 그러지 않고 다만 이렇게 말한다. “그런 것도 못하면 어떡해. 생각을 좀 하란 말이야.”

다이고는 생각을 하는지 하루 종일 앉아서 빈둥거린다. 사실은 그도 새벽 일찍 일어나 분주하게 농장 일을 한다든지 하는 것은 한참 후에야 알았다. 그는 심술궂은 얼굴을 하고서 또 내가 뭘 잘못하나 살피고 있는 것이다. 물론 대놓고 이쪽을 보는 건 아니다. 레몬 소주와 참치회를 먹으면서 혹은 신문을 읽으면서 슬쩍슬쩍 이쪽을 본다. 뭔가 불만에 가득 찬 눈을 하고서. 그러다 심심하면 빨간색 페라리를 타고 어디론가 사라진다.

하루는 사냥꾼들이 방금 잡은 멧돼지를 트럭에 싣고 와서 팔려고 했다. 주방장을 비롯해 주위 사람들이 모두 만류했지만 그는 고집대로 멧돼지를 샀다. 물론 멧돼지 요리는 전혀 팔리지 않았다. 그러자 원래 고기를 싫어하는 다이고는 자신이 직접 먹겠다고 구워서 몇 점 먹더니 젓가락을 놓으면서 말했다. “멧돼지는 근육뿐이라 질겨서 맛이 하나도 없네.”

다이고와 나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았다. 돈 많고 게으르고 고집 센 사장과, 식당 일을 해 본 적이 없는 데다 일본어도 서툰 종업원이 사이가 좋을 리 없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그런 내가 다이고를 좋아하게 된 것은 아마 그의 웃는 모습 때문일 것이다.

늘 아무렇게나 대강 입은 것 같은 옷차림의 다이고가 그날은 말쑥하게 양복을 갖춰 입고 식당에 있는 거울을 보며 웃고 있었다. 기적이라고 해도 좋을 것 같은 마술이 거울 속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거울에 비친 다이고의 웃는 모습은 마치 소년의 웃음처럼 싱그럽고 천진하고 해맑았다. 그는 두 얼굴을 가진 사나이다. 다이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돌아서서 환하게 웃는다. 그는 서류가방도 들고 있다. 그런 모습은 처음 본다.

“어디 가세요?”
“응, 보험 하러.”
“보험 들게요?”
“아니, 내가 식당하기 전에 보험 영업을 했는데 지금도 계속하고 있어. 나 때문에 보험 든 사람들이 있으니까.”

의리 같은 건 멧돼지의 지방만큼도 없을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의리 때문에 거울을 보며 웃는 연습을 한 것이다. 보험 영업을 할 때 자신의 인상이 딱딱해 보여 매일 아침 웃는 연습을 했다고 한다.

그 다음부터 다이고의 얼굴이 다르게 보였다. 퉁명스러워 보이는 인상도 어쩐지 귀엽게 보였다. 일을 하다 이쪽을 보는 다이고와 눈이 마주치면 내가 먼저 웃어주었다. 그러면 다이고도 연습한 웃음을 지어주는 것이다. 얼마 후 다이고는 또 양복을 입고 거울 앞에서 웃는 연습을 한다. 나는 아는 체를 한다.
“보험 일 하러 가는군요.”
“아니, 오늘은 데이트.”
그는 매일 아침 연습했던 환한 웃음을 짓는다.


부부의 일상을 소재로 『대한민국 유부남헌장』과 『남편생태보고서』책을 썼다. 결혼정보회사 듀오에서 기획부장으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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