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파티, 서양의 파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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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5호 20면

1883년 한일통상조약체결기념연회도. 도화서 화원을 역임한 심전 안중식이 그린 것으로, 현재 숭실대 한국기독교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다. 이 박물관 한명근 학

스페인의 이비자섬(island IBIZA), 클럽파티를 즐기는 젊은이들이라면 한 번쯤 가 보고 싶은 꿈의 섬이다. 이비자섬은 클럽파티에서 비치파티까지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전 세계 젊은이들을 유혹한다. 섬에는 파차(PACHA)를 비롯한 세계적인 클럽들이 있다. 클럽 중에는 여름철에만 영업하는 곳도 있지만 현지인이 경영하는 파차 같은 곳은 1년 내내 영업한다. 이 섬은 히피나 누드족들이 모여들기 시작하다가 유럽의 대형 클럽들이 진출하면서 클럽파티의 명소가 됐다. 지금은 여름 한 시즌에 200만 명의 관광객이 찾을 정도로 유명한 관광지가 됐다.

한국 잔치문화, 80년대 국제화 겪으며 서양식 변모

이렇듯 단순히 즐기는 것에서 시작된 파티는 규모가 커지고 다양해지면서 어엿한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아예 파티 스타일의 축제가 국가적인 관광상품이 된 것도 있다.
프랑스에서는 매년 6월 21일 페트 드 라 뮈지크(fete de la musique)라는 전국 음악축제가 열린다. 프랑스 전 지역에서 같은 날 뮤지션들이 공연을 한다. 거리 곳곳에서 음악 소리가 들리고 사람들은 어깨동무를 하고 음악에 맞춰 춤추며 노래한다. 시내 중심의 모든 거리는 차량 통행이 금지되고 사람들은 밤새도록 거리를 몰려다니며 공연을 보고 즐긴다.

지역별로도 비슷한 축제가 있다. 예컨대 프랑스 브르타뉴 지방 렌(Rennes)에 매년 통베 드 라 뉘(tomber de la nuit)라는 축제가 열린다. 유명 공연 예술가들은 공식적인 공연이 있고, 그 외 참가를 원하는 예술가들은 거리에서 공연한다.파티 스타일의 축제는 프랑스에서만 개최되는 것은 아니다. 독일·브라질·스위스 등 이 아이템을 활용한 축제는 이미 유명한 관광상품으로 자리 잡았다.

1년 중 300일 이상 날씨가 맑은 스페인 이비자 섬의 야경. 이비자 섬에서는 매일 크고 작은 파티가 열리는 것

‘파티’의 의미는 우리의 ‘잔치’와 비슷하다. 기쁜 일이 있을 때 여러 사람이 모여 그 즐거움을 함께 나누는 자리나 모임이라는 측면에서 그렇다. 우리나라에서는 19세기 말 개화기에 서양의 문화가 들어온 이후 파티와 잔치 문화가 공존했다. 그런데 최근 들어 잔치보다는 파티라는 말이 더 익숙하다는 사람이 늘고 있다. 그와 함께 서양에는 없는 파티 플래너라는 직업까지 등장했다. 파티가 일상화된 서양에서는 이벤트 플래너는 있지만 파티 플래너는 없다.

우리나라는 예로부터 지역사회와 가족 간의 친목 도모를 위해 수많은 잔치가 열렸다.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은 주로 먹고 마시고 자신들의 춤과 노래를 곁들이며 잔치를 즐겼다. 그리고 이 잔치를 집안의 어른(어머니)이나 맏이(딸·며느리)가 도맡아 진행했었다. 그렇게 수세기 동안 잔치를 진행하면서 서로 집안 행사에 품앗이를 하고 조언을 구했다. 그들이 지금으로 치면 파티 플래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해외여행 자유화와 시장 개방으로 국제화가 진행되면서 서구의 파티가 우리의 일상으로 파고들었다. 이 무렵 일부 계층에서 사교를 목적으로 한 파티가 시작된다. 최근에는 돌잔치나 생일잔치라는 이름도 돌파티·생일파티로 부르는 경우가 많아졌다.

우리나라의 잔치가 지인과의 친분과 교류 위주로 이뤄진다면 서양의 파티는 모르는 사람들과의 ‘사교’와 ‘비즈니스’가 더 강조된다. 한국인은 정적이고 처음 보는 사람에 대해 쑥스러워해 불편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어 초기에는 아무리 멋진 장소에서 맛있는 음식과 공연을 준비해도 파티가 실패하는 경우가 많았다.

우리나라에서 파티가 확산하기 시작한 것은 90년대 해외 유학생들과 여러 동호회가 파티를 열기 시작하면서다. 97년 서울대 대학원 경영학과 연구실에서 하승호 외 2명의 연구원은 소셜네트워킹을 실험 연구하기 위해 ‘클럽프렌즈’라는 파티단체를 만들었다. 클럽프렌즈는 2000년에 법인 등록을 하면서 본격적인 활동을 한다. 클럽프렌즈가 엘리트 집단의 사교파티를 지향했다면 대중을 위한 파티단체로서 99년 파티즌이 만들어졌다.

사교를 중심으로 한 파티 문화는 2002년 월드컵 직전에 새로운 전기를 맞는다. 2000 ~2001년 담배회사와 주류회사들의 지원으로 파티회사가 여럿 등장했다. 이후 서울 홍익대 앞에서 클럽파티가 시작돼 강남으로까지 확산됐다. 클럽파티는 이후 2~3년간 전성기를 거치게 된다. 클럽파티는 즐겁게 놀기 위한 파티였고, 외국 문화를 무분별하게 수용하는 과정에서 여러 가지 부작용을 낳았다. 각종 언론매체들이 클럽파티를 비판했다. 클럽파티에 거부감을 갖는 일반인들도 늘어났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한국의 파티 문화 수준이 한 단계 올라간다. 클럽파티를 이끌었던 사람들이 이벤트와 축제를 위한 기획자로 변신해 파티를 발전시키는 역할을 했다. 소수만을 위한 파티가 대중을 위한 파티로 바뀐다. 기업이 마케팅에 파티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젊은 층은 뭔가 기념할 날을 찾기만 하면 파티를 열려고 한다. 과거 앉아서 술만 축내던 장년층 가운데서도 파티 형식의 모임이 늘고 있다. 파티가 거창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1인당 3만~5만원의 비용으로도 파티를 즐길 수 있다. 젊은이들의 파티는 재치가 넘친다. 지난달 이태원의 작은 카페에서는 20대 커플(남 28세, 여 25세)이 만난 지 100일을 기념한 파티를 열었다. 친구들 10여 명이 참석한 파티는 ▶참석자들이 두 사람에게 편지 써 가기 ▶커플은 친구들에게 함께 노래를 불러 고마움 표시하기 ▶케이크 커팅하기 ▶친구의 과거 폭로하기 등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비용은 카페임대료 20만원 외에 1인당 5만원 정도가 들었다.

1일 오후 5시 경기도 파주 하제 창작마을에서는 화가들이 중심이 된 작은 파티가 열렸다. 전시모임 ‘houses’의 12회 단체전 오픈 기념 파티였다. 20여 명(작가 10여 명, 미술 담당 기자, 후원자, 동료 작가 등)은 야외에서 바비큐 요리를 하고 맥주를 마셨다. 음식을 먹은 뒤에는 앞에 앉은 사람의 얼굴 그려 주기를 해 흥을 돋웠다. 한 참석자는 “예전에 앉아서 술만 마시던 것에 비하면 이야기도 많이 할 수 있고 더 즐겁다”고 말했다.

이렇듯 파티 종류가 다양해지면서 파티를 지원하는 산업도 커지고 있다. 파티 스타일링, 꽃, 벌룬 아트, 외식업체도 광의의 파티산업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파티산업에 대해서는 규모에 대한 추정치조차 없다. 스페인의 이비자섬에서 보듯 파티는 훌륭한 관광자원이 될 수 있다. 파티산업을 제대로 성장시키기 위한 산업적 분석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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