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가 있는 아침] 문정희 '물을 만드는 여자' 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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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딸아,아무 데나 서서 오줌을 누지 말아라

푸른 나무 아래 앉아서 가만가만 누어라

아름다운 네 몸속의 강물이 따스한 리듬을 타고

흙 속에 스미는 소리에 귀 기울여 보아라.

그 소리에 세상의 풀들이 무성히 자라고

네가 대지의 어머니가 되어가는 소리를

때때로 편견처럼 완강한 바위에다

오줌을 갈겨 주고 싶을 때도 있겠지만

그럴 때일수록

제의를 치르듯 조용히 치마를 걷어올리고

보름달 탐스러운 네 하초를 대지에다 살짝 대어라

-문정희(1947~ ) '물을 만드는 여자'중

문정희씨의 만년 여고생 배타적 순결사상도 딸 앞의 모성으로 늙어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쓴다. 그러나 나이든 본인의 측은함을, 이제는 저물어가는 몸의 박동 정지를 딸을 위해 귀 기울이는 잠언(箴言)이긴 하지만 스카프 하나 사주는 그 흔한 모성과는 다르다. 실패한 인생일수록 사랑은 완강하다. 하초를 지키는 파수꾼 역까지.

김영태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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