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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우량의 월드워치] 미 강경파 위험한 확전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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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공격이 시작된 지 20일이 넘었다. 전쟁은 당초 우려했던 대로 장기전으로 갈 것 같다. 계속된 공습으로 대부분 군사시설들이 파괴됐지만 탈레반의 사기는 꺾이지 않았다. 미국은 다음달 17일 시작되는 이슬람 금식(禁食)기간 라마단 전에 전투가 끝나길 바라지만 지금으로선 난망(難望)이다.

라마단 기간 중 공격을 하면 반(反)테러동맹에 가담한 이슬람 국가들의 이탈이 예상된다. 또 겨울철 혹한이 곧 닥친다. 고산지대엔 벌써 눈이 내렸다는 소식이다. 아프가니스탄에서 겨울 전투는 불가능에 가깝다.

국제사회의 비난도 부담스럽다. 민간인 피해가 늘면서 공습 중단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탈레반 후(後)'를 둘러싼 주변국들의 이해 대립도 복잡하다. 러시아.이란.인도 등 북부동맹을 지원해온 세력은 탈레반 배제를 요구하는 반면 아프가니스탄 공격 작전에 필수적 존재인 파키스탄은 탈레반 온건파의 참여를 고집한다.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스라엘의 무차별 공격도 이슬람권(圈)을 자극하고 있다. 이와 함께 탄저병 소동으로 또 하나의 전선(戰線)이 형성된 미국 국내 사정도 상황을 불리하게 만들고 있다.

이 와중에 미국의 강경파는 확전을 부르짖는다. 미국 테러 공격의 배후는 이라크며, 바그다드까지 공격하자고 주장한다. 폴 울포위츠 국방 부장관이 가장 적극적이어서 '울포위츠 음모단'이라는 별명이 붙었다.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뉴트 깅그리치 전 하원의장, 그리고 리처드 펄 국방장관 보좌관이 이끄는 18인 국방정책위원회가 뒤를 받치고 있다. 18인 가운데는 헨리 키신저 전 국무장관.해럴드 브라운과 제임스 슐레진저 전 국방장관.댄 퀘일 전 부통령.제임스 울시 전 CIA 국장 등 거물들이 포함돼 있다. 언론계와 학계의 신보수주의 인사들도 대거 가담했다.

현재로선 이라크가 테러와 관련됐다는 어떤 직접 증거도 없다. 테러 주범인 이집트인 모하마드 아타가 지난해 체코 프라하에서 이라크 정보원과 만났다는 첩보가 고작이다. 논리대로라면 미국은 사우디아라비아나 이집트를 먼저 공격해야 한다.

오사마 빈 라덴은 물론 테러범 19명 중 15명이 사우디아라비아 출신이며, 사우디아라비아는 그동안 탈레반을 적극 지원해 왔다. 테러조직 알 카에다를 지원하는 사우디아라비아 왕족들도 있다. 아프가니스탄 공격에도 사우디아라비아는 매우 소극적이다. 이집트는 이슬람 지하드의 발상지이며, 이집트 출신들이 알 카에다의 핵심이다.

이라크에 대한 공격을 지지하고 나선 나라는 아직 터키뿐이다. 그럼에도 공격을 감행할 경우 국제사회는 미국에 등을 돌릴 것이다. 이슬람권의 반미주의는 더욱 기승을 부릴 것이며, 친미(親美) 성향의 정권들이 잇따라 무너지는 도미노 현상도 예상된다.

우려했던 '문명의 충돌'이 마침내 현실로 나타나는 것이다. 일부 호전(好戰)세력이 주장하는 확전론은 마치 화약고 앞에서 성냥을 그어대는 것처럼 위험천만한 발상이다.

정우량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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