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만신창이' 토공 올해도 1천만평 개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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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토지공사가 부동산 경기 장기 침체 속에 정부.정치권의 입김에 휘말려 어려움을 겪고 있다.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는 지난해 11월 13일 유동성 위기에 몰린 현대에 2천1백억원을 긴급 지원한 토공의 이사회 회의록이 공개됐다.

이날 이사회 발언을 보면 정부가 민간기업인 현대의 부도를 막기 위해 무리하게 토공을 동원했다는 지적이다. 당시 토공 내부에서는 "(현대건설을)현대그룹의 일가 형제들도 안돕는데 우리가 왜 돕느냐"고 따지는 목소리가 컸다는 것이다.

당시 정부는 경제장관들이 '우리가 보증해준다'는 각서까지 집단으로 써 토공에 건네며 서산 땅 매각 위임을 맡겼었다.

"정부가 현대 서산농장 매각 문제를 우리 공사에 위임했다. 사실 (현대건설의 부도를 막아주기 위해)선급금을 주기 위한 방편이다. 매각 수수료 1%가 얼마나 된다고 우리가 맡겠나. 자청해 하는 일이 아니다." 토공의 이사회 회의록에 나오는 김용채 전 사장의 발언 일부다.

정부나 지자체가 맡아야 할 일을 토공이 떠맡는 사례도 많다.

토공 관계자는 "택지개발의 경우 사업시행자는 택지로 진입하는 2백m까지만 도로.상하수도 등 기반시설을 설치하도록 돼 있으나 이런 원칙이 깨진 지 오래됐다"며 "용인권 마구잡이 개발 해소를 위해 추진되고 있는 수도권 남부 광역교통망의 경우 비용 대부분을 부담하도록 요구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말했다.과거에는 택지조성 비용 가운데 간선도로 설치비가 50% 정도 차지했다. 그러나 요즘은 이 도로 비용이 택지조성비보다 최고 두배나 더 들어 배보다 배꼽이 큰 실정이다.

토공이 특혜.유착 의혹에 휘말린 백궁.정자지구는 분당 신도시 개발계획을 수립할 때 개발이익을 많이 낼 수 있는 상업.업무용지 비중을 과다 책정한 것에서부터 비롯했다.

분당 신도시의 상업.업무용지 비율은 전체 면적의 8%다. 그러나 택지개발 때 적정 비율은 보통 3~5%에서 결정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두배에 가까운 셈이다.

토공 관계자는 "당시 수요조사 결과 공공기관.대기업의 이전 수요가 많을 것으로 판단돼 비중을 늘린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실제로 이곳에 본사를 이전한 기업이나 공공기관은 해당 면적의 4분의1도 안된다. 결국 수요예측이 빗나가 상업.업무용지가 남아 돌자 주거지로 도시설계 변경을 추진하는 무리수를 두면서 특혜.유착 의혹에 휘말린 것이다.

토공은 현재 3년 이상 팔지 못한 택지 가운데 상업.업무용지가 44만5천평 1조2천4백34억원어치로 금액 기준으로 가장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어 문제의 심각성을 더해주고 있다. 그런데도 토공은 올해도 1천1백58만평(2조3천5백11억원 규모)의 산업단지를 개발 중이다.

더구나 부산과학단지.오송산업단지 등 6개 지방산업단지를 포함해 총 일곱곳 4백3만평을 추가 개발할 계획까지 세워 놓고 있다.

김시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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