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미국인의 지도자 사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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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9.11 테러 속에서 악(惡)의 존재를 다시 보았다고 많은 미국인은 말한다. 모든 미국인에게 이 사건은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충격이다.

그런 9.11에서 미국인이 건져 올린 중요한 변화가 있다. 그것은 서로에 대한 신뢰가 부쩍 커졌다는 것이다. 국민은 대통령을, 시민은 시장을 믿는다. 대통령과 야당지도자는 서로를 격려하고 국민은 군대를 신뢰한다.

'새로운 신뢰'의 중심에 있는 사람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이다. 브루킹스 연구소 조사에 따르면 부시를 좋아한다는 국민이 지난 7월의 57%에서 10월 초에는 83%로 뛰었다.

취임 초반만 해도 공화당의 부시 대통령은 지난해 대선 개표 파동의 약점에서 시원스럽게 벗어나질 못했다. 민주당 세력을 대변하듯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은 "부시 대통령의 모든 정책이 실망스럽다"는 말까지 했다.

지난 40여일간 지식.정책.말투.어휘력에서 부시가 본질적으로 달라진 것은 없다. 그렇지만 부시는 솔직함 하나로 민심과 뒹굴었다.

그는 소방관 가족을 위로하고, 장병을 격려하며 초등학생의 마음을 달랬다. 부시는 9.11 비극을 얘기하면서 TV카메라 앞에서 눈물을 글썽이기도 했다.

부시를 잘 아는 이들은 연극이 아니라는 걸 안다. 민주당의 톰 대슐 상원 원내총무와 리처드 게파트 하원 원내총무는 차기 대통령 후보로 거론되는 묵직한 야당지도자다.

지난달 20일 상.하원 합동연설을 마치고 부시 대통령이 연단을 내려오자 두 사람은 각각 대통령을 얼싸안으며 뜨거운 지지를 보내주었다.

미국의 TV에는 루돌프 줄리아니 뉴욕시장이 다가오자 청바지를 입은 한 남자가 달려가 목을 끌어안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시장의 감격과 시민의 애정이 화면을 가득히 메운다. 시카고 대학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7%가 "군대를 대폭 신뢰한다"고 대답했다.

걸프전 때보다 27%포인트 높은 것이고 1년 전에 비하면 거의 두배다.

67%의 미국인은 "대부분의 국민이 서로에게 도움을 준다"고 생각하고 있다고 조사는 밝혔다. 지난해보다 21%포인트가 높아진 것이고 1970년 이래 최고치라고 한다.

국민이 사랑할 만한 지도자가 있고 비록 실수를 해도 믿을 수 있는 정부를 가진 미국.이런 애국의 추세가 이어져 미국정신의 소프트웨어가 강화된다면 미국은 9.11의 재앙을 훌쩍 뛰어넘을 것이다.

김진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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