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운영의 독서칼럼] 지식인적 상상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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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행군 도중 자꾸 뒤쳐지는 동료를 구타하는 병사를 보고 톨스토이가 꾸짖었다.

"친구를 그렇게 대하다니 자네는 성경도 안 읽었나?"

"상관께서는 군대의 규율을 안 읽으신 모양입니다."

하느님 말씀으로 현세를 바로잡으려는 톨스토이의 질책과, 엄격한 징벌로 기율을 잡으려는 부하의 책임 의식 가운데 어떤 것이 옳은가? 아니 어느 쪽이 더 효과적인가?

1927년 쥘리앵 방다는 『지식인의 반역』 서문에서 이렇게 문제를 제기하며, "지난 50년 이래 유럽에서 이름을 떨친 모럴리스트의 대부분이-이상하게도 프랑스에서는 작가들이-성서를 비웃고 군대의 규율을 읽도록 인류에게 권하고 있다"라고 한탄했다.

*** 성서 대신에 군대의 규율을

한글 번역판은 1979년 백제출판사에서 나왔는데, 우선 그 선동적인(!) 제목에 눈이 갔다.

저자가 그야말로 노벨상을 탈 정도로 유명하지도 않고, 책 역시 무슨 인류의 고전 따위의 반열에 들지도 않는 터에, 초판 발행 이후 반세기가 넘어 우리에게 선보이는 그 번역의 사연이 궁금했다.

이럴 경우 역자의 정체를 추궁하기(?) 십상인데 '옮긴이의 말'에도 어떤 단서가 없었다. 아쉽기는 하지만 관심을 끄기로 했는데, 최근 정말 우연히도 노서경 선생의 '지식인이란 누구인가' (책세상, 2001)를 대하면서 자칫 '영구 미제'로 끝날 뻔한 사건을 다시 떠올리게 되었다.

역자에서 저자로 변신한 그는 이 찬란한 세계화 시대에 여전히 지식인, 사회주의, 프랑스 좌파 등 '비인기 종목'에 집착하는 느낌이었다.

그래 '프랑스 지식인들의 상상력과 도전'이라는 책의 부제만 보아도 대강 짐작할 일 아닌가?

정치와의 분리를 역설한 자주적 노동 운동의 대부 페르낭 펠루티에(1867~1901), 반전(反戰)에 몰두하다가 피살당한 사회주의자 장 조레스(1859~1914), 반파시즘 연대에 투신한 앙드레 지드(1869~1951), 식민지 군부의 고문을 고발하고 알제리 해방을 지원한 프랑수아 모리악(1885~1970)과 시몬 드 보부아르(1908~1986). 이들의 행적에 대한 소묘가 책의 주요 내용을 구성한다.

그러니까 젖 먹고 트림하던 시절의 얘기부터 시시콜콜 늘어놓은 전기도 아니고, 그렇다고 세계를 움직인 1백 장면 따위에 들어갈 엄숙하고 거창한 포스터도 아니다. 쉽게 풀이하면 한 장의 스냅 사진이다.

그러나 거기 잡힌 '배경'들을 이리저리 꿰어 맞추면 하나의 얘기가 만들어진다. 스냅이라도 전모를 암시하는 이런 스냅이라면 굳이 불평할 이유가 없으렷다.

1827년 프랑스 뮐루즈 노동자의 평균 수명이 21살을 넘지 못했고(18쪽), 노동자 자녀가 대학에 들어간 것이 1950년대란다(20쪽).

둘째 가라면 통곡할 문명국 프랑스에도 이런 미개의 상흔이 있었다. 미개를 문명으로 바꾸는 지름길은 단연 교육이다.

반세기나 앞서 이런 사정을 갈파한 펠루티에에 따르면 "운동의 대의는 지배 논리에 대립되어도 운동 방식은 지배적 경향을 무시할 수 없었다"(21쪽).

그러니까 '만국의 노동자여 단결하라' 대신에 '만국의 노동자여 공부하라'를 외친 셈인데, 이런 정치 배제와 노동자의 지식인 개조에 대한 그의 소신은 투쟁 현장에서 숱한 오해를 불렀다.

그의 순수하고 고독한 투쟁은 34년의 짧은 생애로 막을 내렸으나, 프랑스 노동 운동은 1902년 노동총동맹(CGT) 창설로 새로운 장이 열린다.

제2 인터내셔널은 프랑스 혁명 1백 주년을 기념해서 1899년 7월 14일 파리에서 창립했다. 1914년 제1차 세계 대전의 돌발로 무너지기까지 대회에서 단 한번의 예외도 없이 결의안에 포함된 주제는 반전이었다.

제국주의 약탈이 기승을 부리던 당시 누구의 눈에도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메뉴였다.

여기서 조레스는 전쟁은 개인간, 계급간, 인종간, 민족간 분쟁을 넘어 "모든 인간에 대한 모든 인간의 투쟁"(54쪽)이라는 홉스의 논리를 펼쳤다.

그리고 의회에서의 반전 연설을 통해 그는 "자유는 초라한 빈곤의 침상에서 태어난 노동 계급의 자식"(60쪽)이고,

노동자들은 민족 자존의 선봉이므로 "조국의 독립과 안전을 위해 조직된 노동 계급의 혁명적 성장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61쪽)고 열변을 토했다.

계급과 민족이라는 양대 대의를 한목에 수용하려던 조레스는 개전 한 달 뒤 그를 '비애국적'으로 간주한 '애국적' 광신자의 테러에 쓰러진다.

프랑스 지식인의 유전인자로 보아 반파시즘은 누구라도 받아들일 기치였다. 그러나 문제는 기치가 아니라, 거기 모인 "박학한 교수들이 퇴학당한 학생들보다 더 규율이 없어 보이는"(82쪽) 현실이었다.

부르주아지 출신의 성공한 작가 지드가 이를 못 본 체해도 그만이었다.

그러나 히틀러의 등장에 대해 그는 "나는 이제껏 천하 태평이었다…나는 발언해야 한다…항상 후세에 남으려는 욕망으로 내일의 독자들을 위해 글을 썼다. 그런데 지금은 발언이 곧 사라지는 한이 있더라도 그 자리에서 영향을 줄 수 있는 저널리스트들이 부러워진다"(85~86쪽)고 선언했다.

반파시스트 인민전선 깃발에 숨은 스탈린의 야심은 불쾌했지만 큰 적을 향해 작은 유감을 버리기로 한 것이다.

*** 비판자 아닌 수혜자 지식인

이념의 독재도 없고, 식민지 경험도 없고, 외세의 핍박도 없었던(8쪽) 프랑스 지식인의 상황을 곧바로 우리의 현실에 비기는 것은 옳지 않다. 그럼에도 지식인이 비판자가 아니라 수혜자라는 프랑스 사회 일각의 자성은 아주 묵직하게 다가온다.

기껏 외국의 관찰자인 우리로서는 저자가 지적한 대로 "민주화는 정치적.사회적 목표에 겹쳐 지식의 민주화를 지향해왔다"(1백32쪽)는 그 사회의 풍토가 그저 부러울 뿐이다.

정운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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