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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듣고 자란 벼 윤기 '자르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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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25일 오전 8시 전남 강진군 신전면 벌정리 들판.황금빛 물결 위로 모짜르트의 바이올린 협주곡이 울려퍼진다.사람도 전혀 없는 논에 웬 음악일까.벼들이 음악 감상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강진의 영동농장은 벼들에게 클래식과 국악을 들려주며 농사를 짓고 있다.1백여만평 규모의 영동농장 전체 면적에서 농업 용수로와 도로 등을 뺀 순수 경작지는 70여만평(3천5백마지기).김용복(金龍福 ·67)씨가 버려진 땅을 사서 논을 만들어 1985년부터 쌀 농사를 짓고 있다.

金씨는 집안이 가난해 중학교를 중퇴하고 미군 하우스보이로 사회생활을 시작했다.사우디아라비아에서 사막을 개간,배추 ·무 등을 재배해 큰 돈을 벌기도 했다.

현재 농장을 실질적으로 운영하는 아들 태정(30)씨는 99년부터 3년째 음악농법을 쓰고 있다.

유리온실 ·비닐하우스 등 실내의 원예작물에 음악을 틀어주는 경우는 더러 있어도 들판의 벼 농사에 쓰는 경우는 전례가 없다.

태정씨는 전북 정읍에서 한 농사꾼이 병충해로 골머리를 앓다 기분이나 풀 작정으로 논에서 징 ·꽹과리를 치며 몇 바탕 놀았더니 병충해가 잡히더라는 경험담을 듣고 논에 스피커 24개를 설치했다.

그리고 농장 사무실에서 날마다 두 시간씩 음악을 내보내고 있다.오전 7시부터 한 시간은 모짜르트의 피아노소나타 ·교향곡 ·바이올린협주곡,오후 1시부터 한 시간은 비나리 ·우도굿 ·웃다리풍물 등 우리 농악을 틀어준다.

봄에 못자리에 있을 때부터 가을에 수확되기 전까지 하루도 빠짐없이-.

“좋은 효과가 없다면 돈과 품을 들여 헛짓을 하겠습니까.음악을 듣고 자라면 벼가 튼실하고 병해충에도 강합니다.”

서울대에서 농학을 전공한 金씨는 그 근거로 학계에서 실험을 통해 입증된 파동효과를 제시한다.음악 속의 고주파 파동이 세포의 막을 흔들어 주고 그 결과 벼의 성장이 촉진되고 웃자라 연약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실제 조사 결과 영동농장에서 나오는 볏짚은 다른 논들의 것보다 평균 3㎝가 짧은 대신 밑둥은 3㎜가 더 굵었다.

사람이 들을 수 없는 고주파가 해충들을 쫓아낸다는 설명이다.모기가 많이 꾈 때 풍악을 계속 틀어보면 모기들이 달아나는 것도 같은 이치라는 설명이다.

영동농장은 올 봄에 극심한 가뭄으로 모내기를 제때 못해 7월 중순에야 모를 내 수확량이 크게 줄 것으로 예상했다.그러나 막상 추수를 시작해 보니 평년 수준인 쌀 80㎏짜리 1만2천여 가마는 나온 것 같다고 한다.

金씨는 “음악농법 덕이 분명하다”며 “병해충이 극성을 부리거나 태풍으로 인한 쓰러짐 피해가 심한 때일수록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조상들이 논둑에서 풍물놀이를 하며 풍년을 기원하던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 농장에서는 농약을 사용하지 않고 화학비료 대신 자연퇴비와 활성탄으로 농사를 짓는다.논에 들어가자 인기척에 놀란 메뚜기들이 여기저기서 뛰고 물고랑에는 우렁이와 미꾸라지가 쉽게 눈에 띤다.

金씨는 서울에 애그로 넷㈜(http://www.agrowel.com)를 차려 자신의 농장에서 수확한 쌀을 ‘그린음악 쌀’이란 브랜드로 판매하고 있다.소비자들로부터 전화 또는 인터넷으로 주문을 받은 뒤 영동농장 안에 있는 정미소에서 방아를 찧어 택배로 보내주는 방식이다.또 쌀 껍질을 깎는 횟수도 고객들이 원하는 대로 맞춰준다.

한번에 20㎏ 이상은 팔지 않는 것도 독특하다.아무리 좋은 쌀도 오래두었다 밥을 지으면 맛이 떨어진다는 생각에서다.

10㎏에 3만5천원으로 보통 쌀보다 25% 가량 비싸지만 한번 먹어본 사람들은 꼭 다시 찾아 단골 고객만도 전국에 1천5백명이나 된다.무공해인 데다 쌀이 차지고 밥맛이 좋으며 윤기가 나기 때문이다.

金씨는 “농장 직원 여섯명이 하루 일을 시작할 때마다 논을 향해 ‘감사합니다’라고 외치는 등 임산부가 태교하는 마음으로 농사를 짓고 있다”고 말했다.

061-432-4250.

강진=이해석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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