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압력 가중 '미국 고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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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9면

테러대전에 나선 미국이 고민에 빠졌다.

아프가니스탄에서 3주째 군사공격을 퍼붓고 있지만 탈레반 정권과 테러조직 와해를 위한 결정적인 전기는 마련하지 못했다. 또 본격적인 지상작전의 중대 걸림돌인 동절기가 코 앞으로 다가왔다. 영국 등 동맹국들과의 본격적인 연합작전을 앞두고 미국은 작전시한에 쫓기고 있다.

◇ 늘어나는 미국의 고민=미국은 지난 7일부터 테러 용의자 오사마 빈 라덴과 테러조직 알 카에다, 탈레반군의 거점을 연일 공습해 제공권을 장악하는 등 공격 초반에 상당한 전과를 올렸다고 자평했다. 그러나 탈레반군의 기동력은 여전히 살아 있으며 탈레반 내부의 붕괴나 분열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 미 합참본부와 군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도널드 럼즈펠드 미 국방장관은 "빈 라덴과 탈레반 정권의 지휘부 소재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라고 솔직히 털어놓았다. 이미 일부 전선에는 한밤 중 기온이 영하 20도 이하로 떨어지는 등 동절기가 성큼 다가와 지상작전에 중대한 걸림돌이 되고 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다음달 16일로 다가온 이슬람교의 금식월(禁食月)인 라마단 기간에 맞춰 군사공격을 중단하라는 이슬람권의 압력이 향후 미국 군사작전의 뒷덜미를 잡고 있다.

이집트 수니파의 고위 성직자인 셰이크 파우지 알 제프사프는 23일 미국에 "무고한 사람들의 목숨을 앗아가는 군사공격의 계속은 전세계 이슬람 신도들에 대한 도발행위"라면서 라마단 기간 내 미국의 공격을 중지할 것을 촉구했다. 이에 앞서 페르베즈 무샤라프 파키스탄 대통령도 "라마단 기간이 시작되기 전에 미국은 공격을 끝내라"면서 "그렇지 않으면 이슬람 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던져줄 것"이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파키스탄 등 아프가니스탄 주변 이슬람 국가들의 협조 없이는 미국의 향후 군사작전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점이 미국의 다음 행보를 더욱 어렵게 하고 있다.

◇ 미국의 선택=미국은 현재 화전양면 작전을 구사하고 있다.미 국무부의 리처드 바우처 대변인은 "빈 라덴을 넘겨받으면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격을 중단할 수 있다"는 협상안을 제시했다. 그러나 탈레반 정권이 이 제안을 받아들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따라서 미국은 라마단에 상관없이 공격을 계속할 것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관건은 이슬람 국가들의 반발을 어떻게 무마하느냐다. 북부동맹과의 연합작전을 활성화하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미국은 현재 "과거 라마단 기간에 이슬람 국가들도 전쟁을 벌인 사례가 있다"는 이슬람권 설득논리가 잘 먹혀들지 않아 비지땀을 흘리고 있다.

유권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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