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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 비리라도 공직서 영원히 추방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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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이명박 대통령은 최근 교육계 비리와 관련해 “비리보다 더 큰 문제는 비리가 관습화되고 관례가 되고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필자의 생각으로는 대통령의 인식보다 현재의 비리 정도가 더욱 심각하다고 생각한다. 비리나 부정은 습하고 어두운 환경에서 은밀하게 독버섯처럼 자라며 쉽게 표면에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비리는 아편 중독과 같은 효과가 있어 한번 맛본 사람은 그 심연의 늪에서 헤어 나오기 어렵다. 그래서 비리가 발생하기 시작하면 잉크 번지듯 급속도로 퍼져 그 사회를 병들어 죽어가게 한다.

미국 싱크탱크인 브루킹스 연구소는 뇌물과 정치적 부패 정도가 한 국가의 재정적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에 우리보다 잘살았던 아르헨티나와 필리핀이 지금은 부패와 정치적 불안정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최근에는 그리스가 그 좋은 예를 보여준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에 육박한 그리스의 경우 고질적인 탈세와 부정부패로 재정적자가 쌓여 결국 국가부도 위기로 이어졌다는 그 나라 총리의 발언은 비리로 얼룩진 우리의 앞날을 보는 것 같아 걱정된다.

정부는 이런 나라들의 예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 사회 일부에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이루어지는 스폰서 관행과 지방토착비리를 없앨 수 있는 강력하고 항구적인 수단을 강구해야 한다. 권력기관에 대한 스폰서 또는 촌지 문화, 공사발주나 인허가 부서에 대한 접대문화, 뇌물에 가까운 경조금 지급 등 부정과 비리의 빌미가 되는 관행들을 과감하게 고쳐 나가야 한다. 사건이 터지면 일과성으로 특별조사한다고 요란하게 달려들다 흐지부지되고 마는 식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 한번 부정에 연루되면 과감히 공직에서 제거해야 한다.

만연한 지방토착비리와 교육계의 인사비리에 대해서는 내부 견제 시스템이 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경우 당선되기 위해 많은 돈을 써야 하는 현행 제도 아래에서는 인사나 인허가 비리가 만연할 수밖에 없다. 지자체마다 감사부서가 있다고 하지만 이들 직원을 모두 단체장이 임명하기 때문에 견제가 사실상 어렵다.

올해 3월 ‘공공감사에 관한 법률’이 제정돼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등의 감사 책임자를 개방직으로 공개 채용하도록 해 그나마 제도적으로 보완됐다. 그러나 그 법안도 자세히 뜯어보면 임명권자의 비리를 견제하기에는 역부족이다. 견제가 제대로 이루어지려면 감사책임자는 상급 감독기관이나 별도의 독립기관이 임명하는 등의 획기적인 조치가 필요하다. 선진국 수준으로 도약한 우리 경제를 비리와 부패로 망치지 않도록 부패가 사회 저변에 뿌리내리기 전에 그 고리를 과감히 차단해야 한다.

편호범 딜로이트안진회계법인 부회장 전 감사원 감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