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경주의 골프 철학 … 뮤지컬과 골프는 닮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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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왕따당하지 않으려고 골프에 입문

남경주가 아이언 5개를 들고 스윙하는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는 “개그맨 서경석, 영화배우 공형진, 가수 김성수 등과 하는 라운드를 즐긴다”고 했다. [김상선 기자]

남경주는 4일부터 경기도 이천 아트홀에서 시작된 뮤지컬 ‘맘마미아!’에서 미혼모 도나의 옛 애인 샘 역을 맡고 있다. 맘마미아 공연을 앞둔 지난달 20일 막판 연습에 몰두하던 그를 서울 충무아트홀에서 만났다. 오후 7시가 넘은 시간이었지만 그의 얼굴에는 땀방울이 맺혀 있었다. 20년 넘게 뮤지컬 배우로 활동하며 ‘뮤지컬 지존’으로 불리는 그였지만 “무대에 설 때마다 아직도 신인배우처럼 떨린다”고 말했다.

그는 2007년 골프를 시작했다. 다른 연예인들처럼 골프가 좋아서 시작한 것은 아니었다. 미국에 머물던 중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골프 클럽을 잡았다. 장인의 압박도 그가 골프에 입문한 계기가 됐다. 그는 미국 UCLA에서 동북아지역학을 전공한 정희욱(35)씨와 2005년 결혼했다.

“미국에 사는 장인어른이 결혼하면서부터 골프를 치라고 권유했지만 그때는 별로 관심이 없었어요. 3년 전에 처가에 머물게 됐는데 식구들이 모두 필드로 나가면 혼자서 할 게 없더라고요. 처가 식구들에게 ‘왕따’당하지 않기 위해 골프를 시작하게 됐지요.”

그는 무작정 골프 클럽을 들고 필드로 나갔다. 처음엔 별 재미를 느끼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골프의 매력에 점점 빠지게 됐다.

“실내연습장에서 몇 달씩 연습을 해야 필드에 나갈 수 있었다면 아마 골프를 중도에 포기했을 겁니다. 자랑인지는 몰라도 골프 클럽을 잡자마자 어느 정도 스윙이 되더라고요. 이 세상에 골프만큼 재미있는 운동은 없는 것 같아요. 지금은 골프 전도사가 됐습니다.”

그의 평균 스코어는 95타 정도. 필드에는 한 달에 1~2차례 정도 나간다. 빡빡한 공연 일정 때문에 시간을 내기 어렵다고 했다. 골프 매니어치고는 스코어가 보통이다. 그는 당연한 결과라고 말한다.

“뮤지컬과 골프의 공통점은 ‘땀은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뮤지컬도 골프도 좋아합니다. 뮤지컬은 매일 반복되는 공연이지만 하루만 연습을 하지 않아도 바로 차이가 납니다. 관객들은 못 느낄 수 있지만 상대 배우나 본인들은 잘 알지요. 골프도 마찬가지입니다. 핑계지만 제 경우엔 연습할 시간이 많지 않아요. 그러면서 잘 치기를 바라면 그거야말로 도둑놈 심보겠죠.”

뮤지컬과 골프의 공통점은 부드러운 리듬

뮤지컬이란 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음악의, 음악이 따르는, 음악적인 희가극’이라고 나와 있다. 그는 뮤지컬에 대해 “기악과 노래, 드라마틱한 연기, 역동적인 무용 등 무대 메커니즘이 종합 구성돼 관객과 호흡하는 무대 예술”이라고 정의했다.

뮤지컬 배우들은 연기를 하면서 노래도 불러야 한다. 그만큼 타이밍이 중요하다. 남경주는 이 점도 골프와 똑같다고 강조한다. 그는 “골프도 리듬의 운동이다. 쉽게 골프를 칠 수 있었던 비결도 나름대로 리듬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동료 연예인들과 라운드해 보면 스코어는 몰라도 스윙의 리듬감만큼은 자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사진 촬영을 하면서 그가 보여준 스윙에는 리듬감이 넘쳐 흘렀다. 뮤지컬과 골프는 한 박자에 따라 희비가 엇갈리는 만큼 고도의 집중력과 긴장감을 요구한다. 이런 리듬의 미학이 뮤지컬과 골프의 또 다른 매력이라고 강조했다.

뮤지컬은 종종 완벽하게 맞물려 돌아가는 톱니바퀴에 비유된다. 모든 배우가 정해진 대사와 율동, 노래를 일정한 틀 안에서 소화해야 한다. 한 명이라도 자신이 튀겠다고 욕심을 부리면 모든 게 엉망이 된다.

“젊었을 때는 배역이나 대사량 등에 욕심을 낸 것이 사실이지요.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개인보다는 함께 공유하는 즐거움을 깨달았다고 할까요. 대사 한 마디 없다고 해도 스스로 만족할 수 있다면 그 자체가 행복한 것이죠.”

뮤지컬 스타 남경주의 이야기는 골프 철학으로 연결됐다.

“연예인 골퍼 가운데는 라운드 자체를 즐기기보다는 스코어에 집착하는 사람이 꽤 많아요. 결국 스코어라는 울타리 안에 자신을 가둬놓고 골프의 즐거움을 잊은 채 매일같이 골프채와 전쟁을 벌이는 거죠. 실력은 좋을지 모르지만 불쌍한 골퍼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스코어에 대한 욕심을 버리면 색다른 골프의 세상을 맛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그는 연예인 가운데서는 개그맨 서경석, 영화배우 공형진, 가수 김성수 등 골프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과 주로 라운드를 즐긴다.

“많이 떠들고 유쾌하게 라운드를 즐기는 편이다. 모처럼 마음먹고 어렵게 시간 내서 나간 필드에서 스트레스 받을 필요는 없잖아요.”

힘들수록 기본으로 돌아가라

그에겐 타고난 끼가 넘쳐흘렀다. 인터뷰 내내 진지했던 그였지만 막상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자 다른 사람으로 변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알아서 다양한 표정을 지었다. 골프 클럽을 마이크 삼아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천진난만한 개구쟁이처럼 익살스러운 행동도 서슴지 않았다. 타고난 ‘딴따라’였다. 그런 그에게도 좌절과 시련은 있었다. 슬럼프도 겪었다. 그는 “아직도 마음은 청춘이지만 세월의 흐름을 잡을 수는 없다. 출연 섭외가 줄어들고 맡는 배역이 점점 줄어든다. 일부 연예인 중에는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우울증에 시달리기도 한다. 이럴 때일수록 신인 시절 기분으로 돌아가려고 노력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자신감이 생긴다”고 말했다. 골프 스윙도 똑같다고 한다.

얼마 전에 모처럼 연습장에 갔는데 볼이 잘 맞지 않았어요. 별의별 방법을 다 동원해 봤지만 몇 시간째 나아지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처음 골프를 배웠을 때를 생각해 봤어요. 그립, 어드레스, 백스윙, 임팩트, 피니시 동작 등을 하나하나 떠올리면서 처음부터 다시 스윙을 해 봤지요. 그랬더니 볼이 잘 맞기 시작하더군요.“

그는 골프에서 ‘홀을 지나치지 않으면 버디를 기대할 수 없다’는 말을 가장 좋아한다. 인생에서도 가장 큰 무기는 자신감이라고 강조했다.

“뮤지컬에서도 ‘남들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을까’ ‘관객들이 웃을까’ 이런 생각을 하면 아무것도 못해요. 자신을 믿고 그대로 맡겨야지요. 필드에서도 자신의 스윙과 클럽을 믿어야 합니다. 그것이 바로 인생과 필드에서 굿샷을 날리는 비법 아닐까요.”

글=문승진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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