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 수사·압수수색 의문점] 제주경찰 왜 허둥댔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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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한나라당에 대한 경찰 정보의 유출 사건을 수사 중인 제주지방경찰청이 관련자들을 사법처리하는 과정에서 혼란스러운 행보를 보여 그 배경이 관심을 모으고 있다.

영장이 신청된 22일 오전까지 한나라당 제주도 지부 간부와 연루 경찰관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와 적용 법률을 놓고 계속 혼선을 빚었기 때문이다. 검찰의 지휘를 받는 과정에서 정부.여당의 분위기가 반영돼 이처럼 사건 처리가 꼬였을 가능성에 대한 의혹도 제기되는 형편이다.

◇ 모호한 경찰 행보=제주경찰청은 22일 한나라당 제주도 지부 조직부장 金모(38)씨와 제주경찰서 정보과 任모(56)경사 등 두명에 대해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은 지난 21일 기자회견에서 "任경사는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金씨는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 위반 혐의로 조사 중"이라고 밝혔다. 任경사는 공무상 비밀을 누설했고, 金씨는 공공기관의 정보 문건(기록물)을 은닉.유출했다는 설명이었다.

실제 경찰은 22일 오전 "任경사에 대한 사법처리 수위는 정해지지 않았고 金씨에 대해서만 영장을 신청할 방침"이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경찰은 이날 金씨에 대한 적용 법률을 돌연 공무상 비밀 누설죄로 바꿔 任경사와 함께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정치적으로 민감하고 국민의 관심이 집중된 사건을 처리하는 경찰의 행보로서는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미숙했다.

사건 초기부터 검찰의 지휘를 받으면서 이렇게까지 허둥댄 것을 보면 본의와 달리 '어떤 작용'이 있지 않았나 하는 의심이 가는 대목이다.

◇ 이상한 법적용=김선우(金宣佑)변호사는 "경찰이 金씨에게 '공공기관의 기록물 관리에 관한 법률'을 적용하려 했던 것은 충분한 법률 검토 부족으로 해석된다"고 말했다.

결국 경찰은 이들 두 사람에게 공무상 비밀 누설죄를 적용했다. 金씨가 비밀 누설을 교사했고 任경사가 문제의 문건을 건네준 공범관계로 본 것이다.

영장을 신청하는 과정에서 적용 법조문을 면밀하게 검토한 결과 공공기록물 관리법으로는 구속영장조차 받아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한나라당 지부 사무실과 金씨 집에 대한 압수수색 집행에 대해 한나라당측은 "구금 중인 金씨를 입회인으로 대동해 빈 사무실을 수색한 것은 명백한 야당 탄압"이라고 주장한다.

이에 대해 경찰은 "법적인 하자는 전혀 없고, 任경사가 세건의 문서를 추가로 전송했다고 진술해 증거 확보를 위해 수색했을 뿐"이라고 해명했다.

◇ 김홍일 의원의 동향이 공무상 비밀인가=경찰은 "정보 수집.작성 등의 직무에 종사해 온 任경사가 취득한 정보는 명백한 공무상 비밀"이라고 밝히고 있다.

주요 인사의 동향 등이 일반인에게는 비밀이 아닐 수 있지만 공직자, 특히 정보를 다루는 공무원에게는 직무상 취득한 정보가 확실해 비밀에 해당한다는 주장이다.

법조계에서는 "문제가 된 김홍일 의원에 대한 동향 보고서가 단순 정보임에는 분명하지만 정보형사가 직무상 취득한 정보이므로 '공무상 비밀'로 볼 수도 있다"며 "그러나 명백한 교사나 오랜 기간의 공모가 없었던 金씨를 이 사건의 공범으로 보는 것은 법적인 논란의 소지가 있다"고 말했다.

제주=양성철 기자

<야당당사 진입 사례>

▶1979.8.11:YH 여성노동자들이 농성 중이던 신민당사에 경찰 1천명 투입해 강제해산.

▶1992.9.9:한준수 연기군수를 체포하기 위해 마포 민주당사에 경찰 2백명 투입.

▶1995.9.22:최선길 노원구청장 비리사건 증거물을 확보하기 위해 임채정(당시 국민회의)의원 노원을 지구당 사무실에 대한 경찰 압수수색.

▶1998.12.30:6.4지방선거 공천헌금혐의를 수사하기 위해 이원범(당시 자민련)의원 대전 서갑 지구당사와 자민련 대전시지부에 대한 검찰 압수수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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