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군의 한·일 만화보기] 신세대의 삶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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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유행가 가사도 있듯 우리는 사랑을 통해 어른이 되는 법을 배웁니다. 이빈의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와 쓰다 마사미의 『그 남자! 그 여자!』는 신세대의 사랑과 성장통(痛)을 그린 학원물입니다. 사랑 이야기가 큰 줄기를 이루지만, 두 만화의 내용은 판이합니다. 전자가 어둡고 냉소적인 분위기라면 후자는 시종 밝고 경쾌한 템포를 잃지 않습니다.

『크레이지 러브 스토리』의 혜정은 우수한 성적의 '카리스마 걸'입니다. 하지만 모범생의 가면으로 가려둔 그녀의 진짜 얼굴은 술과 담배를 예사로 하며 심심풀이로 소매치기를 하는 반항아의 그것입니다.

그녀의 '비행'은 엄마와 언니가 세상을 뜨고 얼마 안돼 새 가정을 꾸려버린 아버지에 대한 울분 때문입니다. 여린 속을 감추려 차가운 표정을 짓기로 선택한 혜정에게 작은 안식처가 돼주는 건 역시 '비행 청소년'이란 딱지가 붙은 남자친구 지미와 성무입니다.

한 명은 가학적인 태도로, 다른 한 명은 맹목적인 헌신으로 혜정에게 애정을 쏟습니다. 학교 밖에서 방황하는 세 사람의 사랑은 달콤하고 로맨틱하다기보단 쓸쓸하고 파괴적입니다.

한편 『그 남자! 그 여자!』는 모범생들의 사랑 이야기입니다. 머리.성격.용모 어디 하나 빠질 데가 없는 여학생 유키노. 그녀가 사귀게 된 남자친구 아리마는 한술 더 뜨는 '완벽남'입니다.

이들의 고민은 이러한 외양이 자신이 진정으로 원한 것이 아니라는 데 있습니다. 유키노의 완벽함은 피나는 노력으로 만든 '가짜'입니다. 가령 집에서는 부스스한 머리에 도수 높은 안경을 끼고 헐렁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동생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대는 것이 그녀의 본 모습입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사귀면서 변화가 찾아옵니다. 콤플렉스를 극복하려 '가짜'되기를 서슴지 않던 유키노와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릴 수 없어 모범생 역할을 고수하는 아리마가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을 배우게 된 것이지요.

두 만화는 90년대 중반 비슷한 시기에 출간돼 청소년 독자들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습니다. 하지만 성인 독자들에게도 권하고 싶습니다. 혜정이와 유키노같은 사랑과 방황을 거쳐 어른이 된 이들에게, 그리고 아이들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법을 배우고 싶어하는 이들에게 말입니다.

박성식 만화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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