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불만계층 시위…갈수록 대형·폭력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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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위안(漢源) 소요 사태'의 단순 참가자를 처벌하지 말라."

중국의 후진타오(胡錦濤)국가주석은 최근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출국하기 직전 특별 지시를 내렸다. 한위안 소요 사태란 쓰촨(四川)성 한위안 현에서 수력 댐 건설로 삶의 터전을 잃을 주민들이 대규모 폭동을 일으킨 것을 가리킨다. 한때 15만명이 참가해 군경과 대치하면서 도로.통신망까지 마비시킨 1949년 공산정권 수립 이후 최대의 농민 시위였다.

중국의 시위 양상이 달라지고 있다. 수십명이 참가하거나 개인의 분신.투신에 그쳤던 시위가 순식간에 수만명이 참가하는 가두시위로 번지고 있다. 시위 방식도 과격해졌다. 지방정부 청사를 포위하고 차량을 뒤엎거나 돌을 던지는 단계를 지나 ▶화염병.가스통 준비 ▶고위 관료 연금 ▶장기 농성 등으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에 거주하는 반체제 인사 왕쥔타오(王軍濤)가 "천하대란의 조짐"이라고 말할 정도다.

◆ 시위 규모=1만명을 넘는 시위가 부쩍 늘어났다. 지난해 1년간 5만8000건의 시위.분규가 있었으나 대부분 1000명을 넘지 않는 규모다.

지난달 18일 충칭(重慶)시 완저우(萬州)구 시위는 고위층을 빙자한 부유층 남성과 허름한 차림의 짐꾼 간 길거리 시비가 발단이었다. 부유층 남성이 "나는 시 정부의 고위 관료"라며 짐꾼을 두들겨 팼다고 한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군중 수만명이 구(區) 청사로 몰려가 밤늦게까지 가두시위를 벌였다. 구 경찰만으론 진압하기 어려울 만큼 규모가 커져 폭동 진압 경찰이 긴급 출동했다.

허난(河南)성에선 한족(漢族)과 소수 민족인 회족(回族) 간에 쌓여왔던 적대 감정이 폭발했다. 회족 남성이 몰던 차량이 17세의 한족 소년을 치어 숨지게 하자 양측에서 수만명이 무기를 들고 충돌했다.

◆ 과격으로 치닫는 불만 계층=홍콩 경제일보는 "한위안 사태로 최소한 농민 17명이 숨지고 수십명이 부상했다"고 보도했다. 주민들은 무장경찰이 출동하자 무기를 들고 경찰 차량을 뒤엎었다. 무장경찰도 2명 숨졌다. 주민들은 장쉐중(張學忠) 성위 서기가 현지 시찰을 나오자 한때 그를 억류해 계엄령을 방불케 했다.

충칭 완저우에선 3만~4만명이 구 청사를 둘러싸고 경찰 차량에 불을 지르고 돌.벽돌을 던졌다. 군경 수천명이 최루탄과 플라스틱 총탄을 쏴 군중을 해산시켰다. 광저우(廣州)시 바이윈(白雲)구에선 지난달 6일 노점상 단속에 항의해 남자 70명이 흉기를 들고 단속반과 대치했다.

◆ 강온 정책 병행=중국 정부는 온건 정책으로 민심을 달래고 있다. 원자바오(溫家寶)총리는 최근 "노동자들의 임금이 체납되지 않도록 하라"고 긴급 지시했다. 농민들의 터전을 빼앗는 대형 프로젝트도 민생을 감안하도록 했다.

반체제 인사에 대한 관대한 조치도 내리고 있다. 89년 노동자 파업을 주도했다가 사형을 선고받았던 천강(陳剛)이 지난 4월 석방된 것을 비롯해 국가기밀 누설 혐의로 무기징역을 살고 있는 우스선(吳士深.전 신화사 간부)도 조만간 석방될 것이라고 홍콩 언론들은 보도했다. 후 주석이 집권한 뒤 풀려난 체제 비판 인사는 지금까지 4명이다.

유화 정책의 이면엔 언론 통제 등의 강경 조치도 있다. 홍콩 명보는 "당 중앙에서 시위.소요 사태와 관련해선 관영매체인 신화통신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받아 보도하라는 지침이 내려졌다"며 "이를 어길 경우 엄중하게 처벌할 것이라고 했다"고 보도했다.

홍콩=이양수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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