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하이닉스 중국매각 안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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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최악의 경영위기를 겪고 있는 하이닉스가 고강도 자구노력의 일환으로 일부 반도체 공장의 중국매각을 추진하고 있다.

그동안 비주력사업 매각을 통해 구조조정을 추진해온 하이닉스로서는 비장의 마지막 카드를 꺼낸 셈이다. 이처럼 하이닉스가 주력사업인 반도체 부문의 자산매각을 통해 유동성을 확보하겠다는 것은, 가지가 아닌 몸통을 잘라내서라도 어떻게든 회생의 발판을 마련해 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 반도체 기술이전 부작용

최근 금융감독위원회 고위 관계자는 "채권단이 신규 자금지원을 논의하는 과정에서 특단의 자구노력을 요구했고 하이닉스가 이를 받아들인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함으로써 이번 하이닉스의 반도체공장 부분매각 결정에 금감위와 채권단의 적지 않은 입김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반도체 부분매각은 확실한 현금유입이기에, 유동성 위기극복을 통해 경영정상화를 바라는 채권단과 정부에 하이닉스 매각은 국민부담을 줄여 줄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으로 비춰질 수 있다.

그러나 냉정히 볼 때 해외매각은 특단의 자구노력일 뿐 그 자체가 경영정상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오히려 기술이전의 부메랑 효과로 장기적으로 국익(國益)에 반할 수 있다. 즉 중국으로 기술이 이전되면 삼성전자는 물론 하이닉스에도 피해가 돌아올 수 있다.

하이닉스는 이번 매각을 반도체부문 구조조정 차원에서 일부 노후화된 잉여 생산라인을 처분하는 것이라 하지만 이는 하이닉스의 바람에 불과하다. 중국은 벌써 반도체공장 인수조건으로 하이닉스가 보유한 0.18~0.2미크론 미세가공기술 이전을 요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공장매각은 우리에게 가장 위협적인 잠재경쟁국 중국에 우리의 첨단 반도체기술과 핵심인력을 고스란히 넘겨주는 것이나 다름없다.

물론 중국의 기술이전 통로는 하이닉스만이 아니다. 일본의 NEC 등은 우리나라에 대한 견제차원에서 이미 중국에 반도체기술을 이전해 주었으며 대만업체의 중국시장 진출도 가시화되고 있다.

그러나 하이닉스는 중국이 기술이전을 강력히 바라는 일본.대만 기업보다 기술경쟁력이 높은 세계 3위의 기업이다. 따라서 기술력이 생명인 반도체 산업의 특성을 감안할 때 현금을 확보하기 위해 하이닉스를 중국에 매각하겠다는 것은 당장을 모면하기 위해 내일을 그르치는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우를 범하는 것일 수도 있다.

현재 중국의 반도체 가공기술은 우리 나라보다 5년 정도 뒤진 것으로 평가된다. 이를 뒤집어 보면 반도체산업이 우리 경제의 젖줄일 수 있는 기간은 불과 5년 정도며 이 기간 안에 우리는 메모리 반도체 '이후'를 준비해야 한다.이러한 때 첨단 반도체기술 이전은 중국에 날개를 달아주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나라는 메모리 반도체 이후를 준비하기도 전에 반도체산업의 경쟁력을 잃을 수도 있다.

과다부채로 이미 재무적으로 시장의 신뢰를 잃은 하이닉스를 범국민적으로 지원한 이유는 하이닉스라는 '대마(大馬)'가 가진 충격도 있었지만 보다 근본적으로는 하이닉스가 가진 기술경쟁력을 사장시켜서는 안된다는 판단이 섰기 때문이다.

하이닉스는 2001년 전반기에 미국의 마이크론보다 높은 매출이익률을 실현해 그만큼 원가우위가 입증됐다. 하이닉스의 중국매각을 통해 기술평준화가 이뤄져 기술력의 우위를 지키지 못하면 그동안 채권단이 쏟아 부은 금융자금은 서서히 '매몰(sunk)'될 수도 있다.

*** 법정관리 등 대책 마련을

지금은 하이닉스에 대한 법정관리를 진지하게 검토할 때다. 그동안 법정관리를 금기시한 이유는 하이닉스가 갖는 빅딜에 대한 상징성과 채권단의 잠재부실이 부실로 잡힐 때 수반되는 충격 때문이었다. 그러나 빅딜은 과거지사이며,법정관리는 '부실의 실제화'를 가져올 뿐 국민경제적 차원에서 잠재부실의 규모를 크게 하는 것은 아니다.

또한 법정관리를 하이닉스의 '사망신고'인양 몰고간 것도 사실은 채권자와 주주의 이해관계를 반영한 것이다. 이제 하이닉스의 경영위기에 대해 채권단과 주주는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한다.

법치와 부합되는 법정관리를 통해 과거와 단절하는 것이 하이닉스에 대한 미국의 특혜시비를 불식시키고, 재무적으로 취약하지만 기술력을 가진 하이닉스에 마지막 갱생기회를 주는 유효한 대안인 것이다.

趙東根(명지대 투자정보 대학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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