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 우리시대 대표 작가들 시·소설집 나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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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7면

가을엔 시가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된다. 마음이 하늘.들국화를 닮아 순해지는 가을에 문학은 우리의 유년.추억, 그리고 초발심이 된다. 노래가 되고 그림이 되고 추억이 되는 문학들이 풍성하게 나오며 올 가을 또다시 쓸쓸한 마음들을 더욱 익어가게 하고 있다.

우리 시대의 대표적 시인.소설가들이 소위 문학청년에 쓴 시.소설들을 각각 묶은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 (5천원)와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소설이 나를 찾아왔다』(8천원)가 최근 도서출판 여백에서 동시에 출간됐다.

1950~70년대 문학을 지망하는 중.고생들의 작품 발표 무대로 각광받았던 '학원'지에 발표된 작품들을 주로 모은 이들 책에는 김광규.문정희.안도현.오세영.정진규.최인호.김병익.김승옥.김화영.윤후명.이시영.정호승씨, 오정희.이청준.황석영.김원일.양귀자.이제하씨 등이 문학도로서 그때 발표한 시와 소설이 실려 있다.

"어쩔 수 없는 인과(因果)로/뻐꾸기가 산에서 울듯이/내가 운다고 합시다//머언 젊음을 가슴 속에/호올로 되씹어 보는/가을밤의 낙엽같이/내 마음이 낙엽진다고 합시다//귀뚜리 풀잎에서 한없이 울어대면/창백한 가을 창과/하룻밤을 드새 봅니다"

문학평론가 김병익씨가 대전고 2학년 시절인 55년 '학원'에 발표한 시 '정야(靜夜)'의 한 부분이다. 이 시에 대해 김용호 시인은 "긴 가을밤에 귀를 기울이면 고요하다 못해 도리어 가슴이 무서움에 떨리는 일이 있다. 그러한 느낌이 이 시 속에서 배어나는 듯하다"고 평해 주었다.

그런 김씨가 이제 한국의 평론을 이끄는 중진이 되었듯 문학도 시절 그들은 비록 서툴더라도 자신의 심경을 가장 아름답고 솔직하게 드러내려 장르를 가리지 않은 문필 활동을 펼쳤다.

이들의 시와 소설에서 우리는 삶에 대한 풋풋한 그리움, 떨리면서도 행복한 예감을 만날 수 있다. 세월은 지났지만 희미하게 빛바랜 옛사진이 아니라 이 가을 이 글들은 우리의 잠재울 수 없는, 더욱 생생한 쓸쓸함.그리움으로 다가온다.

시인과 작곡가.가수들이 만난 시노래 모임인 '나팔꽃'은 시와 노래를 함께 엮은 BOOK-CD 『제비꽃 편지』(현대문학북스.1만3천원)를 최근 펴냈다. 김용택.정호승.도종환.안도현.유종화 시인의 시 14편을 백창우.김원중.안치환씨 등 9명이 작곡하고 노래한 시와 노래를 책과 CD로 함께 선보인 것이다.

"가을이 되면 찬밥은 쓸쓸하다/찬밥을 먹는 사람도/쓸쓸하다/이 세상에서 나는 찬밥이었다/사랑하는 이여//낙엽이 지는 날/그대의 저녁 밥상 위에/나는/김 나는 뜨끈한 국밥이 되고 싶다"

안도현씨의 위 시 '찬밥'에 곡을 붙여 노래한 배경희씨는 "찬밥 먹는 어머니의 등은 또 얼마나 초라하고 쓸쓸했던가"라고 어린 시절을 회상한다. 가족에게 따뜻한 밥을 주려 언제나 찬밥만 먹던 어머니 같이 우리는 가족, 사회에 가슴 쓰린 찬밥의 감동을 준 적이 있는가고 배씨는 노래하고 있다.

대중에게 안읽힌다는 것을 핑계로 시는 시대로 고상한 자폐증에 자꾸 빠져들고, 노래는 대중과 인기만 찾아 자꾸 내려가는 시대, 예전에 그랬듯 시와 노래가 가장 좋은 자리에서 한데 만나 우리 삶에 따뜻한 감동을 주고 있는 것이다.

'나팔꽃'은 매달 마지막 주 월요일 오후 7시30분 서울 대학로 샘터 파랑새 극장에서 콘서트를 열고 있다.

이경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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