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출판]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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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5면

◇ 중남미 상식 퀴즈1=멕시코의 대표적인 독주 데킬라가 선인장 증류주이고, 알콜도수 40도라는 것은 남성이라면 대부분 안다. 그러면 데킬라란 뜻은 무엇일까? 힌트는 '코냑'을 연상하면 된다.

중남미 기행서 『배를 타고 아바나를 떠날때』에 따르면 코냑이 프랑스의 마을 이름이듯 할리스코주의 한 마을에서 생산되는 술만이 데킬라라는 상표를 부착할 수 있다. 마을 이름이 술 이름으로 둔갑한 경우다.

◇ 중남미 상식 퀴즈2=스웨덴 그룹 아바의 '페르난도'는 라틴풍의 가요다. '라 팔로마' '베사메 무초'같은 유명한 노래도 원산지는 중남미. 다음은 퀴즈. "가수 조영남이 불렀던 '제비'도 중남미 노래일까?" 정답은 '그렇다'이다. 중남미의 정서와 한국인의 정서는 그만큼 닮은꼴이다.

책 제목도 '라 팔로마'의 첫 구절에서 취했다. 쿠바 아바나 항구에서 '사랑스런 치니타(중국계 창녀)'와의 이별을 읊은 노래가 그것이다.

쿠바.페루.칠레.멕시코 등 4개국 기행을 싱싱한 현지정보로 채우는 데 성공한 이 책은 국내에 손꼽히는 몇 안되는 중남미 전문가가 쓴 책이다.

서울대 국제지역원에서 라틴아메리카를 강의하는 저자도 "신변잡기나 인상기를 넘어서는 기행문을 쓰려 했다"고 강조한다. 그 결과 소망스런 지역연구에 근접했을 정도로 밀도가 높다. "제1세계만 쳐다보는 우리들의 지독한 몰골을 벗어던지려 했다"는 말도 시각교정을 위해 설득력이 있다.

지난주 리뷰된 『남미가 확 보인다』가 비판적 시각의 정치.경제서라면 이 책은 역사와 문화 쪽 정보로 가득하다. '다양한 인종과 잡종화(하이브리드)문화에 대한 매혹'을 전제로 했기 때문에 책의 전체가 따뜻한 시선으로 채워져 있다. 이를테면 1989년 옛 소련 붕괴 뒤 빈사상태에 놓인 쿠바와 피델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가 그렇다.

현재 쿠바는 카스트로의 언명대로 "혁명 이래 정도가 아닌, 쿠바 역사 이래 가장 어려운 국면"에서 서서히 벗어나고 있다는 것이 그의 평가이고, 원인 제공을 한 것은 미국이라는 것이 이 책의 분석이다.

그러나 '편향'은 아니다. 이미 6~7년이 된 개혁정책 이후 달러경제권에 흡수되면서 가치관 혼란이 조성되고 있음도 지적한다. 초등학교 교사이면서 몸을 파는 여성 야니(26)와의 대화도 소개되고 있다.

책의 곳곳에 서구인의 시선으로 동양을 재단하는 오리엔탈리즘에 대한 비판도 상당수다.

중남미를 작품에 등장시킨 '날개 돋친 뱀'의 D H 로렌스나 '권력과 영광'의 그레이엄 그린이 묘사한 중남미 이미지는 섬세한 이해가 부족할 뿐더러 왜곡에 가득찬 가짜라는 고발도 설득력있게 들린다. 결과적으로 제1세계만 편식해온 독서계를 위한 양질의 음식이 이 책이다.

조우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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