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ose-up] 한방 화장품 승부수 … 서경배 아모레퍼시픽 사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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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모레퍼시픽 서경배(47·얼굴) 사장은 세계에서 인정받는 패션·뷰티 명품 브랜드를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고 있다. 국내 기업들이 TV·휴대전화에서 세계적인 제품을 내놓고 있는데, 패션·뷰티에서도 못할 게 없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약 2800억원인 해외 매출(2009년 기준)을 2015년까지 1조2000억원대로 키우겠다는 복안이다. 전체 매출의 30%를 해외에서 벌어들이겠다는 의미다. 이달 초 800여억원을 출자해 해외사업 전담 지주회사를 홍콩에 세운 것도 글로벌 사업에 힘을 싣기 위해서다.

서 사장이 해외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고 자신하는 것은 이 회사의 최고급 제품인 ‘설화수’에 기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설화수는 인삼·소나무·매화·동백 등 한국을 대표하는 4대 원료에 다른 한방 재료를 추가해 만든 한방 화장품이다. 아모레퍼시픽은 이르면 다음 달 국내 한방 화장품으로는 최초로 미국에 설화수를 선보인다. 뉴욕 최고급 백화점 버그도프굿맨에 입점하는 것이다. 하반기엔 중국 주요 도시의 고급 백화점에도 내놓을 예정이다.

설화수의 세계시장 진출은 “가장 한국적인 것을 들고 세계로 가야 성공할 수 있다”는 서 사장 소신의 산물이다. 그는 “설화수만큼 아시아 원료를 사용하고, 한방 화장품이란 점을 전면에 내세워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한 화장품 브랜드는 없었다”며 “세계에서 인정받는 동양적 브랜드로 키우겠다”고 말했다.

가족사도 깃들어 있다. 그의 할머니 고 윤독정 여사는 개성에서 동백기름을 직접 제조해 팔았다. 아버지인 고 서성환 회장은 소년 시절부터 모친의 일을 돕다가 화장품 회사를 창업했다. 1972년 인삼 유효성분 추출로 특허를 획득했고, 73년 사포닌 성분을 함유한 ‘진생삼미’ 화장품, 87년 인삼에 생약성분을 가미한 ‘설화’ 등 한방 화장품에 공을 들였다.

미국과 중국 진출을 결심하기까진 홍콩에서의 성공이 힘이 됐다. 2004년 서 사장은 설화수를 들고 홍콩에 가기로 결심했다. 글로벌 화장품 업체들이 경쟁하는 홍콩에서 자리를 잡아야 해외시장 공략이 가능할 것이라 봤다. 하지만 회사 안에서조차 ‘해외에서 생소한 한방 컨셉트가 먹힐까’ ‘만약 실패하면 국내에도 악영향을 끼치지 않을까’ 등의 우려가 제기됐다.

하지만 서 사장은 홍콩 진출을 밀어붙였다. 당시 사전조사를 해봤더니 특유의 한방 향에 대한 거부감이 의외로 적었다는 점에 자신감을 얻었다. 오히려 향을 맡으니 마음이 진정된다는 반응이 나왔다. 서 사장은 처음부터 제품이 아니라 한국 문화의 정수를 알린다는 전략을 썼다. 2004년 홍콩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론칭 행사 때는 ‘한국의 화장문화 유물 전시회’를 열었다. 행사 4개월 전부터 경기도 용인 아모레퍼시픽 미술관에 있던 문화재급 유물을 현지에 전시하기도 했다.

지난해엔 명품 거리인 침사추이 캔톤 로드에 설화수 제품을 원료로 스파를 받는 최고급 스파 하우스를 열었다. 케시 리, 리가흔 등 유명 영화배우들이 800만원짜리 정기 스파권을 끊고, 매장에서 화장품을 사자 별다른 광고 없이도 입소문이 났다. 설화수는 2004년 홍콩 진출 이후 연평균 39%씩 매출이 늘고 있다.

최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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