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관계 악화로 '난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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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갑작스런 이스라엘 각료의 암살사건에 누구보다 당혹스러운 쪽은 미국이다. 미국은 사건 직후 애리 플라이셔 백악관 대변인의 논평을 통해 테러행위를 비난한 뒤 야세르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수반에게 "암살자들을 조속히 처벌하지 않으면 테러범에게 무력도 사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그러나 미국의 이같은 발언은 이스라엘의 입장을 고려한 경고성 측면이 강하다.

'9.11 테러' 직후 미국은 그 어느 때보다 중동사태를 우선적으로 진정시키기 위해 뛰었다. 오사마 빈 라덴과 탈레반 등 테러 관련 이슬람 일부 세력에 대한 군사행동에 앞서 사우디아라비아.이집트.시리아.요르단 등 이슬람 국가들의 지지를 끌어내려면 중동사태를 먼저 진정시켜야 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지난달 18일 테러발생 일주일 만에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무력사용 중단 선언을 이끌어냈고 온건 이슬람 국가들의 반테러 공조를 유도했다.

심지어 조지 W 부시 미 대통령은 지난 2일 이스라엘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팔레스타인 독립국가 창설을 지지한다"고 밝혀 이슬람권의 환심을 산 뒤 아프가니스탄에 대한 공습을 시작했다.

이처럼 온건 이슬람을 다독거린 이후 진행된 아프가니스탄 공습이 한창 진행 중이고 탈레반 축출 이후의 새정부 구성 논의가 진행 중인 마당에 미국으로서는 중동사태가 암살사건으로 악화하는 것을 원하지 않고 있다.

자칫 이번 사건으로 중동사태가 기독교와 이슬람의 문명충돌로 비화할 경우 오사마 빈 라덴의 시나리오에 말려들 수 있다는 점을 미국은 잘 알고 있다. 따라서 미국은 또 한번 외교력을 발휘해 아라파트의 결단과 이스라엘의 자제를 유도할 가능성이 크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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