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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대] 모방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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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이 있다. 남의 것 베끼는 것이 일반화된 세태를 은근히 합리화하는 말이지만, 독창적으로 뭘 만들어 내기가 그만큼 어렵다는 뜻이다.

모방에 관한 한 일본인을 따라갈 장사가 없다. 단순 모방에 그치지 않고 재창조를 통해 원본보다 좋은 것을 만드는 재주가 기막히다.이를 '이이도코토리(良いとこ取り)'라 하는데 좋은 것은 받아들여 자기 것으로 만든다는 뜻이다.

'배우다'는 뜻의 '마나부(學ぶ)'란 말 자체가 '마네루'(眞似る, 모방하다)에서 왔다. 둘의 중간말인 '마네부'는 두가지를 다 뜻하는 고어다. 서양에서 기술을 배워 서양보다 우수한 제품을 만드는 일본인들의 재주 이면엔 바로 이런 모방문화가 자리잡고 있다.

모방을 뜻하는 영어 단어는 세가지가 있다. 가장 일반적인 단어가 'Imitate'로, 모조란 의미가 강하다. 'Mimic'은 동작을 흉내낼 때 쓰는 말이며, 'Copy'는 복사하듯 찍어낸다는 말이다. 쓰임새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모두가 일단은 부정적인 의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모방은 인간의 본능에 해당한다. 사람은 누구나 모방을 통해 지식을 습득해 나간다.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는 『시학』에서 "인간은 모방본능을 갖고 태어나 이를 통해 학습하고 희열을 느낀다"고 했다. 예술 창조의 원동력이 바로 모방이라는 것이다. 이 현실 모방이론은 18세기 낭만주의의 현실 창조이론이 등장하기까지 서구 시학의 근간이었다.

이런 '건설적'모방이야 언제 어디서건 탓할 게 없다. 문제는 최근 들어 범죄까지도 종종 모방의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대표적인 모방범죄가 우리나라에서도 툭하면 발생하는 연쇄 방화사건이다. 며칠 전 한 고교생이 '친구'란 영화를 보고 동급생을 살해한 사건도 일종의 모방범죄다. 범죄심리학에서는 이런 심리상태를 '동일시(同一視)'라고 한다. 주인공과 자신이 같다는 착각에서 대리만족 하거나 이번 고교생처럼 용기를 얻는 것이다.

미국에서 탄저병 환자가 속속 밝혀지더니 이번엔 전세계에서 가짜 탄저병 소동이 벌어지고 있다. 가뜩이나 뒤숭숭한 판에 이런 악질 장난까지 겹쳐 세상이 다 흉흉하다. 국내에서도 신고가 잇따르고 있다고 한다.

이런 모방범죄에는 일벌백계(一罰百戒)가 약이다. 마침 미국에서 가짜 탄저병 신고를 했다가 붙잡힌 사람에게 5년형에 3백만달러(약 40억원)의 벌금을 부과할 예정이라니 참고할 만하다.

유재식 베를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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