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너 ○씨잖아?” 놀림에 바꾼 성 다시 바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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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부모의 이혼 후 성(姓)과 본(本)을 변경한 자녀가 “성씨를 원래대로 바꿔 달라”며 낸 신청을 법원이 받아들였다. 2008년 1월 민법 개정으로 성·본 변경 제도가 시행된 이후 처음이다.

서울가정법원에 따르면 이모(49·여)씨는 김모씨와 1990년대 초 결혼했다. 슬하에 아들 영석(15·가명)이를 낳았지만 성격 차이로 이혼했다. 이후 박모씨와 재혼한 이씨는 2003년 둘째 창엽(7·가명)이를 낳았다. 하지만 이씨의 결혼 생활은 남편의 가출과 함께 다시 막을 내렸다.

2008년 3월 이씨는 법원에 가서 두 아들의 성을 자신의 성인 이씨로 바꿨다. 전남편들의 기억을 지우고 자신의 힘으로 아이들을 잘 키워보겠다는 의도였다. 하지만 영석이는 예상치 못한 문제에 부딪혔다. 같은 중학교에 간 초등학교 동창들이 예전 이름대로 ‘김영석’이라고 부르는가 하면, 몇몇 친구는 “왜 성을 바꿨니?”라며 놀림감으로 삼기도 했다. 견디다 못한 영석이는 지난 2월 어머니 이씨와 함께 법원을 찾았다. 법정에서 영석이는 “친구들이 물어볼 때마다 ‘엄마가 이혼해서 그렇다’고 말해야 하느냐”고 했다.

사건을 맡은 서울가정법원 가사20단독 윤종섭 판사는 영석이의 성·본을 ‘전주 이(李)씨’에서 ‘김해 김(金)씨’로 바꿀 수 있도록 허가했다고 4일 밝혔다. 동생 창엽이의 성도 이씨에서 ‘밀양 박(朴)씨’로 바뀌게 됐다. 두 달간 고심한 끝에 “아이들의 행복과 이익을 위해 재변경이 필요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성·본 변경 허가 신청은 지금도 꾸준히 접수되고 있다. ‘전남편에 관한 기억은 모두 지우고 싶다’ ‘아이들과 새 출발을 하고 싶다’는 엄마들이 적지 않았다는 게 법원의 설명이다. 김윤정 가정법원 공보판사는 “섣불리 성을 바꾸면 아이에게 상처가 될 수 있는 만큼 재혼 가정이 안정적인 단계에 들어가는 등 여건이 조성된 다음에 바꿔도 늦지 않다”고 조언했다.

이현택 기자

◆성(姓)·본(本) 변경=자녀의 복리를 위해 성과 본을 변경할 필요가 있을 때는 부모 또는 본인의 청구에 의해 법원이 변경을 허가하는 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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