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옴부즈맨 칼럼] '어른 존경심' 심층 분석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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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때늦었지만 명절 이야기를 꼭 하고 넘어가고 싶다. '명절 증후군' '며느리 증후군'에 대한 범상치 않은 기고 두 편 때문이다.

하나는 인터넷에 떠도는 '며느리를 위한 시'를 인용해 여성들의 소외된 명절노동의 현실을 차분히 얘기한 9월 27일자 박미라의 '마이너리티의 소리'(7면)다. 2~3년전부터 몇몇 여성 단체와 여성주의 언론 매체들이 주도해온 명절문화 바꾸기 운동이 올 추석에는 신문과 방송을 섭렵하면서 온 국민의 화두로 떠오르는 듯했다.

하지만 그 후 여성운동 내부에서는 작금의 명절 담론이 핵심을 비켜간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여성의 소외된 노동 현실을 보여주는 데는 큰 도움이 되었지만 일년에 몇 번씩 돌아오는 제사는 물론 부모 생일, 돌잔치, 결혼, 집들이 등 모든 가족 행사가 며느리나 어머니들의 노동에 의존한다는 점을 부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절 문화의 '개선'을 넘어서 제사 제도의 폐해를 없애자는 근본적 주장이 나와야 한다는 소리도 들린다.

이 글에 화답한 사람은 의외로 시아버지뻘 되는 연세의 경제인이었다. 이미 유언장을 만들어 놓았다는 박종규(바른경제동인회 부회장)씨의 9월 30일자 시론 '제사 제도를 바꾸자'다. 남자들이 여자를 거들어야 한다는 개량적 처방을 훌쩍 뛰어넘은 내용이 압권이었다.

그는 이미 써놓았던 유언장에 '며느리를 위한 시'와 함께 이런 말을 덧붙였다고 한다. "…또한 일반적인 제사는 지내지 마라. 어느 집이나 맏며느리 되는 사람의 노고가 너무나 크다. 기일 아침에 각자의 집에서 나의 사진과 빨간 꽃 한 송이 꽂아놓고 묵념 추도로 대신하기 바란다.

그리고 저녁에 음식점에 모여 형제간의 우의를 다지는 기회로 삼아라.… 이러한 추도도 너희들 일대로 끝내기를 바란다.… 친척들이 뭐라 하든 상관 말고 내 유언대로 하여라."

두 기고문은 세대간.성별간 '소통'의 현장이었으며, 박종규 씨의 선언은 올해 떠돌던 명절 담론 중에서 가장 급진적인 처방이었다.

10월 11일자 1면 톱은 '한국 청소년들 어른 존경심 아태(亞太) 17국 중 꼴찌'라는 기사였다. 유니세프에서 올 초 이 지역 17개 국가의 청소년 1만73명을 면접 조사한 결과라고 한다. 그런데 관련 기사인 '엄마.선생님에게도… 상소리로 호칭 예사'는 아쉬움을 남겼다.

청소년이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 원인으로 몰개성적 교육 풍토와 급속한 산업화로 인한 가치관의 혼재를 들면서 대책의 하나가 '칭찬문화' 활성화라고 했는데, 좀더 깊이 있는 해설이나 분석이 필요했을 것이다.

기사를 보면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다.청소년이 왜 어른을 존경하지 않을까□ 모든 청소년이 꼭 모든 어른을 존경해야 하는 건가? 그들이 존경하는 건 누구일까□ 다른 지역 청소년들은 어머니를 더 존경한다는데 우리나라에선 왜 아버지를 더 존경할까□

유니세프의 조사엔 이밖에도 의미있는 항목이 여럿 있었다. '항상 행복한가□'라는 질문에 한국 청소년들은 38%만이 그렇다고 했다(17개국 평균 52%). 잘못을 저지르면 부모들의 76%가 꾸중을 했고, 25%가 충고를 했으며, 22%는 구타, 3%는 방치를 했다고 한다(복수 응답).

그렇다면 청소년들이 교사나 부모를 칭할 때 욕설을 섞는다는 것을 제목으로 뽑을 일이 아니라 어른들이 청소년에게 말을 거는 방식이 어떤지를 살폈어야 하지 않았을까? 청소년 문제는 그들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은 다른 세대와의 관계 속에, 사회의 구조적 문제들 속에 살고 있기 때문이다. 어른을 존경하지 않는다는 청소년들의 솔직한 발언에 '어른 세대'가 솔직하고 용기있게 화답하기를 기대한다.

李淑卿(웹진 줌마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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