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생화학 테러 대책 강화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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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생화학 테러 공포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미국에서 25년 만에 처음으로 탄저균 감염 환자가 발생하고, 탄저균을 지닌 것으로 보이는 흰색 가루가 우편물로 배달되는 사건이 속출하면서 미 국민이 극도의 불안에 떨고 있다. 테러라는 증거가 아직 없고, 단순 모방 범죄일 가능성도 있지만 9.11 테러 대참사의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는 미 국민으로서는 충분히 집단 노이로제 증세를 보일 만하다.

1995년 일본 도쿄(東京) 지하철역에서 발생한 사린 가스 살포 사건에서 보듯 생화학무기는 극소량으로도 치명적 인명 피해를 줄 수 있다. 사이비 광신도 집단인 옴 진리교 신도들에 의해 자행된 당시 테러로 12명이 죽고, 5천5백명이 부상했다.

탄저균.천연두.페스트 같은 세균으로 만든 생물학무기와 사린.소만.타분.청산칼리 등을 재료로 한 화학무기는 소규모 실험실에서 적은 비용으로 제조가 가능한데다 살포 방법이 다양하고 은닉과 운반이 용이해 테러 수단으로는 더없이 효과적이다. 특히 한국처럼 인구밀도가 높은 나라에서 생화학무기는 핵무기와 맞먹는 살상력을 발휘할 수 있다.

북한은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화학무기 보유국인 동시에 상당량의 생물학무기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쟁 수단으로 생화학무기 사용을 금지하는 방안은 72년 체결된 생물학무기 금지 협정(BWC)과 같은 국제적 협정을 통해 추진해야 한다.

한반도에서 전쟁 재발을 막기 위한 화해.협력 노력을 지속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만 만일의 경우에 대비해 남북한간에도 생화학무기 금지 협정 체결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당장 시급한 문제는 종교적 신념 등에 지배되는 광신적 테러 단체들에 의한 생화학 테러 가능성이다. 한국은 테러와의 전쟁에 동참키로 선언한데다 다수의 미군 시설이 국내에 있다. 특히 내년에 열릴 월드컵대회는 테러 집단에 절호의 기회로 인식될 수 있다. 정부는 생화학 테러를 차단하기 위한 검색.감시 체제를 대폭 강화하는 한편 유사시에 대비한 긴급 구난 체제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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