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퇴계] 3. 왜 위대한 사상가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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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퇴계는 한국이 낳은 위대한 사상가요,교육자다. 퇴계학은 이제 한국을 넘어 세계의 사상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 말은 최근 한국인들이 익히 들어온 말이다. 그래서 퇴계의 위대함을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막상 퇴계의 위대한 점이 어디에 있는가를 꼬집어 말하려고 하면 애매해진다. 퇴계의 위대함은 이미 상식이 되었지만, 어떤 점 때문에 위대한지는 아직 상식이 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전문가의 말을 들어보면,퇴계는 중국의 주자학을 넘어 독창적인 영역을 개발했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한다. 그리고 그 독창적인 것 중 대표적인 것은 그의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에 있다고 한다. 이기호발설의 내용은 '이'와 '기'가 서로 '발'한다는 것이다.

이 말은 확실히 맞는 말이다.퇴계는 호발설을 주장했고, 그 호발설이 그의 이기설의 핵심이 되어 있다.

그리고 이 호발설이 성리학의 이기론을 한층 심화시킨 것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호발설을 주장했다고 해서 그가 그토록 위대한 사상가가 될 수 있었던 것일까□

이와 기의 이야기만 나오면 머리가 아파지는 것은 현대인들뿐만이 아닐 것이다. 퇴계 당시의 사람들도 몇몇 전문가를 제외하고는 아마도 머리가 아픈 이야기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퇴계의 위대함은, 그리고 그토록 많은 사람으로부터 추앙 받게 되는 까닭은 이런 이론에 있지 않음이 분명하다. 그렇다면 그것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퇴계는 유학자다. 퇴계는 유학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않는다. 유학은 공자가 정리한 사상체계다. 공자 사상의 특징은 인(仁)과 지(知)를 결합한 중용철학에 있다. 인은 남의 슬픔을 나의 슬픔으로 여기고 남의 고통을 나의 고통으로 여기는, 말하자면 남과 나를 하나로 여겨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마음이다.

이에 비해 지는 남과 나를 구별하는 마음이다. 남과 나를 구별하여 각각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 지의 특징이다. 그러므로 인은 따뜻하고 지는 차갑다. 그런데 중용에 의한 이 인과 지의 결합방식은 단순히 둘을 붙여놓는 방식이 아니라, 인을 알맹이로 하고 지를 외피로 함으로써 하나의 체계로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중용철학의 소유자는 속은 따뜻하지만 겉은 냉정하다.

속마음 깊은 곳으로 들어가면 거기에는 모든 사람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한마음이 있다. 이 한마음이 하늘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마음 깊은 곳에서 하늘을 만날 수 있다. 하늘을 만나 하늘의 모습으로 살게 되면 남과 나를 구별하지 않고 남을 나처럼 사랑하는 마음이 나온다. 그것이 인이다.

그러나 지의 마음은 사람을 육체적 존재로 파악하고, 서로 경쟁하는 존재,투쟁하는 존재로 파악하고, 인간사회를 위험한 사회로 파악한다. 그래서 지의 마음은 사회를 안정시키기 위해 예(禮)를 중시한다.

유학의 학문방법은 예를 먼저 배우고 다음에 인을 얻는 방법을 택한다. 이러한 학문 방법 때문에 유학자들 중에는 예를 배우는 데서 멈추는 사람이 많고, 인에 도달하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 유학이 딱딱하게 느껴지고 유학자가 깐깐하게 느껴지는 면이 있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퇴계는 학문을 완성한 사람이다. 퇴계는 인을 완전히 터득한 사람이다.그는 하늘같은 사람이 되었고, 사랑의 화신이 되었다. 그는 더 이상 예에 얽매이는 낮은 차원의 선비가 아니었다. 그는 과부가 된 며느리를 개가시키기도 했다.

외로운 사람에게는 외로움을 달래줄 사람이 필요하다. 사람들은 외로우면 고향집으로 간다. 고향 어머님의 무한한 사랑의 품에 안기면 외로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퇴계는 친정 어머님 같은 존재가 되었다. 외로울 때면 달려가 안겨서 하소연하고 싶은 그런 존재가 된 것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퇴계를 잊을 수 없다. 퇴계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오늘날 사람들은 무한 경쟁에 시달리고 있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긴장한다.약간만 긴장을 늦추면 남들에게 소외당하고 만다.

그래서 현대인들은 외롭다.그럴수록 외로움을 달래줄 고향 어머님을 필요로 한다. 퇴계의 위대한 사랑이 오늘날 새롭게 부각되는 이유는 여기에 있다.

이기동<성균관대학교 교수 ·한국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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