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 회견 의미] MD미련 더 커진듯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8면

9.11 테러 한달을 맞아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연 기자회견은 험난한 대(對)테러전쟁에 착수한 미국의 긴장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그는 이번 기자회견을 통해 탈레반 정권의 전복을 완전히 기정사실화했으며 국민에게 추가 테러 혐의자 신고요령까지 설명했다. 재래식 전력으로는 게릴라전을 이길 수 없다는 베트남전의 뼈아픈 교훈까지 인정했다.

부시는 이외에도 몇가지 의미 있는 대외정책 내용을 언급했다.

특히 테러지원국이라도 이번 테러전쟁에서 미국에 협력한다면 얼마든지 손을 잡을 것이라고 말한 것은 미국 외교노선의 변경을 시사하는 것이다.

이스라엘의 생존권 인정이라는 전제아래 팔레스타인 국가를 인정하겠다는 선언도 미국의 중동정책 선회를 다시 한번 확인했다는 의미가 있다.

또 탈레반 붕괴 이후의 아프가니스탄 재건문제를 언급하며 유엔의 역할을 강조한 것도 걸핏하면 국제협약을 거부하던 태도와는 달라진 모습이다.

우습게 보며 '독불 장군'처럼 행세하던 이전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 아닐 수 없다.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에 대해 빈 라덴 일당을 넘기면 공격을 멈출 것이라는 언급과 적은 이슬람이 아니라 사악한 테러분자들이라고 한 것은 이번 전쟁이 문명충돌이 아니라는 미국의 입장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곤 한 단계 더 나아가 이번 테러사건을 계기로 미사일 방어(MD)를 더 강하게 추진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부시의 MD에 관한 이날의 언급은 의외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천문학적 돈이 드는 초현대적 미사일 방어에 자원을 쏟기보다 테러방지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이 많은 상황에서 다시 강력한 추진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MD에 관한 부시의 이런 언급이 앞으로 러시아와 유럽 등으로부터 어떤 반응을 불러일으킬지는 미지수다. 대 테러전쟁을 치르면서 미국이 모처럼 국제적인 안보연대를 구축해 나가고 있는데 이게 자칫 잘못될 경우 연대의 와해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워싱턴=김진 특파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