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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동원'공개 비판 파문] 김 복지, 재경부 월권 "참고 참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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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 연기금 운용 계획에 공개적으로 이견을 제기한 김근태 보건복지부장관(왼쪽)이 19일 의원회관에서 열린 보건진료소 우수사업사례 발표대회에 참석해 이석현 보건복지위원장과 얘기하고 있다. 조용철 기자

김근태 보건복지부 장관이 19일 경제 부처의 국민연금 기금 운용 방향에 대해 공개적으로 비판한 것은 이를 둘러싸고 잠복해 있던 오랜 갈등이 폭발한 것이다.

복지부는 "운용주체는 우린데 경제 부처가 '콩 놔라 팥 놔라'하느냐"는 것이고, 경제 부처는 "제대로 운용할 능력도 없으면 업무를 내놔라. 나라 경제도 생각해 기금을 운영해야 한다"라고 맞서왔다.

김 장관은 재정경제부가 연금 기금을 동원한 뉴딜정책을 추진하면서 주무 부처인 복지부와 사전 협의를 거치지 않는 데 대해 '월권'을 행사한다는 인식을 가져왔다. 복지부 홈페이지에 올린 글에서 "참고 참았다"는 표현이 들어간 것도 이런 때문이다.

반면 이헌재 경제부총리는 김 장관의 발언을 전해들은 뒤 "주무 장관으로서 국민들의 우려를 감안해 할 말은 했다고 본다"면서도 "수익이 나는 사업이 존재하고 누군가는 손대는데 연기금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것은 어리석은(foolish) 일"이라고 맞섰다.

◆ 김 장관 비판의 배경=김 장관은 지난 10일 이 부총리와 김병일 기획예산처 장관에게 "연금제도에 대한 국민의 불신이 깊은 마당에 경제 부처가 나서면 국민이 '또 정부 맘대로 갖다 쓰려 한다'고 생각하고 그것이 제도 부정으로 이어진다. 앞서 나가는 논의를 자제해 달라"고 요청했다. 지난 8월에도 비슷한 요청을 했다.

그런데도 뉴딜정책에 연금을 동원한다는 계획이 재경부에서 계속 흘러나왔고 지난 15일 이 부총리가 "외국 자본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에 연금을 활용하겠다"고 한 발 더 나가자 반격에 나선 것이다.

복지부 실무 관계자도 "지난 7일 당(黨).정(政).청(靑) 경제 워크숍에서 뉴딜정책을 발표할 때도 전날 밤 10시에야 자료를 보내더라"고 강한 불만을 표했다. 다른 관계자는 "재경부가 뉴딜정책에 대해 단 한번도 우리와 협의한 적이 없다"고 전했다.

◆ 전망=양측의 시각 차이가 커 당장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경제 부처는 9월 말 현재 국민연금 적립금은 128조원이나 되지만 전체의 84.2%인 108조가 채권에 들어가 있어 포트폴리오(자산 분배)에 문제가 많다고 본다.

재경부 관계자는 "우량 채권을 사서 만기까지 갖고 있다 파는 게 무슨 기금 운용이냐. 수백조원에 이르는 자금을 묶어 두면 국가적 손해"라는 논리를 펴고 있다.

이에 대해 복지부는 동의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국민연금이 출범한 1988년 이후부터 2000년까지 재경부가 45조6371억원을 공공자금이나 재정자금으로 끌어다 썼고, 이자를 시중금리보다 낮은 채권이자로 주는 바람에 2조6000억원의 손해를 봤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따라서 또다시 원칙없이 연기금이 동원될 경우 국민 불신이 걷잡을 수 없게 돼 제도의 존립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경제 활성화를 위해 어떻게 해서든 연기금을 활용해야겠다는 경제 부처와 노후 복지의 유일한 안전판인 국민연금 기금의 안정성을 우선시하는 복지부의 힘 겨루기는 당분간 계속될 전망이다. 여기에 연기금의 주식 투자를 전면적으로 허용하는 것을 골자로 한 기금관리기본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도 만만치 않아 사태가 더 복잡하게 꼬일 수도 있다. 그러나 이번 일을 계기로 관련 부처 간 대화가 활성화돼 합의점이 도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는 없다. 김 장관도 "한국형 뉴딜정책이나 사회간접자본에 국민연금이 들어갈 수도 있다"라며 투자 다각화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인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만일 정부 부처 간 이견이 해소되지 않은 채 논란이 증폭될 경우 파장은 걷잡을 수 없이 커지게 된다. 연금제도에 자체에 대한 국민적 불신이 증폭돼 지금보다 더 내고 덜 받는 구조로 바꾸는 국민연금법 개정안의 국회 처리가 무산될 수도 있다.

신성식.김영훈 기자 <ssshin@joongang.co.kr>
사진=조용철 기자 <youngc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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