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문화] 첫 전쟁 이미 치러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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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뉴욕의 세계무역센터와 펜타곤 건물에 대한 테러가 발생한 지 한달이 됐다.

상상을 뛰어넘어 거의 초현실주의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이 사건에서부터 미국과 영국의 대대적인 아프가니스탄 보복 공습으로 발전하기까지 지난 한달 동안 우리는 텔레비전과 일간신문 그리고 주간지에서 많은 이미지들을 보고 많은 글들을 읽었으며 여러 대담을 통해 많은 이야기도 들었다. 그러나 기억에 남는 것은 글이나 말보다 이미지다.

*** CNN은 美 검열관 노릇

전쟁확산에 대한 두려움에 마음 졸이면서도 우리는 그 사이 여러 가지 종류의,많은 이미지들을 보았다.

그렇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는 착각이다. 우리가 본 것은 사실상 몇 가지 되지 않는다. 미디어를 통해 몇몇 이미지들을 반복적으로, 마치 세뇌교육 받듯이 집중적으로 주입받았던 것이다. 특히 학습받듯 반복적으로 본 것은 뉴욕무역센터 및 펜타곤 건물의 붕괴장면이다.

우리는 우리가 본 것이 모두 실시간에 현장중계로 방송된 것으로 흔히 혼동한다.

그러나 사실상 첫날 첫번째 실황방송 빼고는 모두 연출된 반복에 불과하다.

동일한 이미지에 매번 새롭게 덧붙여지는 해설, '공격받은 미국(AMERICA UNDER ATTACK)'이라는 선정적인 자막(건물 붕괴 후의 복구장면의 이미지에는 '단합된 미국'이라는 구호로 변경), 보다 드라마틱하게 영화적으로 보여주기 위한(진주만 공습을 상기시키는) 보충 이미지의 추가와 화면 재설정 등의 편집상의 조작으로 그것이 이미 시간적으로 지나간 사건장면의 되풀이라는 것을 잊게 만들었던 것이다.

세계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뉴욕이 위치한 지점으로부터 거의 지구의 반대편에 사는 우리는 일주일 넘도록 매일 밤낮으로 텔레비전에서 같은 이미지를 지겹도록 보고 또 보고 또 놀라고,

또 질리고 때로는 신기해하면서 이미지가 보여주는 그 스펙터클, 그 사건이 계속 현재형으로 지속되는 느낌에 사로잡혔던 것이다. 말하자면 장면을 영속화시킴으로써 그 사건을 시간적 맥락에서 끄집어 내 탈역사화하고 정서적 충격을 최대한으로 축적, 증폭시키려는 시도에 우리 스스로 최면술에 걸린 듯 말려 들어가 있었던 셈이다.

한편 우리는 이 사태와 관련해 우리가 본 것보다 못 본 것이,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 얼마만큼 더 많이 있는지 상상해 보려고조차 하지 않았다. 우리가 본 것은 전부 통틀어 고작 몇 장의 사진으로 요약될 수 있는 것이다.

비록 그 이미지가 충격적이며 많은 함의를 품고 있는 것이었다 할지라도 그것만으로는 사태의 본질이나 핵심에 대해 알려주는 바가 없다. 오히려 그 반대일 수도 있다. 순전히 시각적 정보라는 차원에서 보더라도 우리가 본 것은 우리가 보지 못한 것에 비하면 정말 미미한 것이다.

빈 라덴이 숨어 있다고 하는 아프가니스탄 전 국토가 갖가지 첨단 미사일과 신예폭탄으로 공격당하기 이전에 전세계 텔레비전 시청자들은 전지구의 네트워크를 독점적으로 지배하는 미디어의 공격을 이렇게 일방적으로 받았다.

현재 벌어지고 있는 아프가니스탄의 대대적 공습을 전쟁 또는 전쟁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이는 그 이전에 이미 치러진 첫번째 전쟁 다음의 두번째 전쟁이다.

*** 미디어 공격받은 아프간

미디어를 통한 전쟁, 즉 전략적 이미지의 융단폭격이 CNN을 비롯한 미국의 주요 미디어에 의해 전지구상에 매우 효과적으로 실행되고 난 후의 일이다.

그리고 CNN방송과 이를 아무런 여과 없이 그대로 중계하는 한국의 텔레비전을 통해서밖에는 이 사태를 접할 길이 없는 우리들은 사실상 이 첫번째 전쟁의 무력한 희생자들 가운데 하나다.

테러리즘과 정의로운 전쟁,문명과 야만, 그리고 선과 악의 이분법적 대립을 그토록 분명하고 정당한 것인 양 만들어준 것은 과연 무엇이었던가.

특권적으로 선택된 이미지에 가려 보이지 않는 역사적 현실,이에 대한 맹목이 '죄와 벌', '정의의 심판', '보복''응징' 등등 테러리즘이라는 단어 못지않게 무시무시한 어휘로 점철된 야만적 신화가 현실화하는 바탕이 된다.

21세기의 지구 표면 위에 구약성서의 가장 어두운 한 페이지가 다시 펼쳐지려고 한다고나 할까.

崔 旻 <한국예술종합학교 영상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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