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확대경] 김재박 감독의 재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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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여우의 꾀’가 만들어낸 동점과 역전승의 발판이었다.

“타임!타임!” 현대가 0-1로 뒤진 8회말 2사 만루,이숭용의 타석에서 두산 박명환이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자 현대 김재박 감독이 갑자기 타임을 부르고 덕아웃에서 나왔다.김감독은 임채섭 주심에게 박명환이 셋포지션에서 멈추는 동작없이 ‘퀵피치’를 하는게 아니냐고 항의를 했다.이 항의는 항의를 위한 항의가 아니라 경기의 리듬을 깨서 박명환의 페이스를 흔들어 보겠다는 의도였고,김감독의 ‘전술’은 그대로 적중했다.

박명환은 당시 1사 만루의 위기에서 현대 4번타자 심정수를 3구 삼진으로 낚아올려 한숨을 돌린 상태였다.상승세의 리듬을 탄 것이다.그리고 또 후속 이숭용에게 초구 스트라이크를 던지며 유리하게 경기를 풀어가자 김감독은 이 리듬을 깨야 동점의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타임을 부르고 나온 것이다.

순간적으로 리듬이 끊어진 뒤 박명환은 이숭용에게 터무니 없는 볼 2개를 연속 던졌고 이후 2-2에서 다시 유인구를 던지는 실수를 했다.주자가 만루여서 밀어내기 가능성이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2-2에서 유인구를 던질게 아니라 승부구를 던졌어야 했다.결국 풀카운트에서 승부구로 던진 바깥쪽 직구가 아슬아슬하게 벗어나면서 이숭용은 밀어내기로 동점을 만들었고,현대의 분위기는 살아나 결과적으로 역전이 가능했다.

김감독은 이날 6회말 2사후 구원으로 오른 박명환이 5연속 스트라이크로 세명을 아웃시키는등 한번 감을 잡으면 상승세라는 것을 꿰뚫고 있었다.여우의 지략에 말려들면서 두산은 다 잡았던 1승을 놓쳤다.

수원=이태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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