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버스토리] 은행들 기발한 'VIP 마케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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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은행이 수집한 미술품을 거실에 걸어놓고, 은행 경매를 통해 산 고급 와인을 마신다. 나이가 찬 자녀의 중매를 은행에 맡긴다. 정기적으로 종합 건강진단을 무료로 받는다.

거액 예금주들이 은행에서 받을 수 있는 혜택이다.

초저금리 시대를 맞아 은행들이 VIP고객에게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금리를 높게 주기 어렵자 대신 고객의 고급스런 입맛을 충족시켜 부유층 손님을 끌어들이자는 전략이다. 거액 예금주의 자산을 종합적으로 또는 관심 분야에 맞춰 관리해주는 프라이빗 뱅킹(PB)의 초기 단계다.

하나은행이 지난달 10일 모집한 '하나 아트펀드'는 최저 예금액이 1인당 3천만원인데도 첫날에 한도 30억원이 찼다.

가입기간이 5년인 이 펀드는 미술품에 주로 투자해 얻은 수익을 배당한다. 특히 펀드에서 사들인 작품이 다시 팔릴 때까지 원하는 예금주의 집에 걸어놓을 수 있다. 투자하면서 취미생활도 즐길 수 있는 것이다.

하나은행은 가격 변동이 큰 고미술품보다는 신인작가의 작품에 주로 투자할 계획이다. 은행이 미술품 시장의 '큰손'으로 떠오른 것이다.

미술잡지인 '월간미술'은 이 펀드가 미술품 시장에 크게 기여할 것이라며 지난달 김승유 하나은행장에게 월간미술대상(특별부문)을 주었다.

이 은행 강봉재 대리는 "미국 시티은행에는 미술사학자 등 전문가들로 구성된 7개의 아트뱅킹팀이 활동하고 있다"며 "선진은행들은 이미 오래 전부터 돈 많은 고객의 고급 취미활동을 도와주는 프라이빗 뱅킹 서비스를 해왔다"고 말했다.

하나은행은 수십만원짜리 고급 와인을 경매하고 와인 정보를 교류하는 행사도 가질 예정이다. 이 은행은 또 VIP고객 자녀의 결혼도 중매한다.

사내 통신망에 우리 지점 고객 자녀 중 괜찮은 사람이 있다는 정보를 띄우면 다른 지점에서 알맞은 상대를 찾아주는 식이다.

올 여름 창립 30주년 행사 때는 '참 잘 큰 자녀의 사랑 찾기'라는 이름으로 우량고객의 자녀들을 대상으로 한 미팅 이벤트를 열었다. 당시 남녀 30명씩 맞선을 봤는데, 이 중 6쌍이 지금도 만나고 있다고 은행 관계자가 귀띔했다.

하나은행은 이밖에도 골프를 좋아하는 우량고객에게 서울 삼성동 상설 골프연습장을 무료로 개방하고 있다.

한미은행은 예금 5억원을 넘는 VIP고객에게 무료 종합건강검진을 해준다. 지금까지 8백여명이 검진을 받았는데, 최근 두명의 고객이 암을 조기 발견했다.

이 은행은 우량고객을 대상으로 총 이익금의 5%를 여러가지 서비스를 통해 고객에게 돌려주는 마케팅을 하고 있다.

보석 전시회와 패션쇼 등 부유층 고객의 눈길을 끌 수 있는 이벤트를 열고, 신라호텔과 함께 공연과 요리축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준다.

신한은행은 VIP고객을 대상으로 '뉴스레터'라는 월간 잡지를 만들고 있다.

부유층 고객의 취향을 파악하기 위한 것이다. 이 은행도 최상위 고객에게 건강검진권.호텔 패키지상품 이용권.공연 티켓 등을 제공하고 있다.

김희철 하나은행 PB팀장은 "PB뱅킹 담당자들이 다양한 서비스에 관여하다 보니 마치 귀족의 '집사'같다는 농담을 한다"며 "최근엔 한 VIP 고객이 PB 담당자에게 '아버님이 돌아가셨는데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연락해와 영안실을 섭외해 주었다"고 말했다.

정철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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