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창호 선원이 본 밀입국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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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밀입국하려다 숨진 중국인 25명을 수장한 혐의로 10일 구속된 제7태창호 선원들은 죄책감에 몹시 고통스러워하는 모습들이었다.

선장 李판근(43)씨를 제외한 선원 7명은 밀입국자들이 자신들의 배에 오르기 전까지는 만선의 꿈에 부풀어 있었다.

이들이 전남 여수시 봉산어항단지를 출발한 것은 지난달 29일. 지난 5일 오전 9시까지만 해도 갈치.조기 1천4백상자(2천만원 상당)를 잡은 터라 3~4일만 열심히 일하면 만선(2천5백상자)은 문제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날 밤 태창호는 조업 중이던 동중국해 공해상에서 갑자기 불을 끄고 중국어선에 접근하기 시작했다.

선원 崔금열(45.여수시 봉산동)씨는 "뭔가 이상하다고 생각했는데 훈련받은 사람들처럼 중국사람들이 순식간에 배에 올라탔다"고 말했다.

선원들이 당황하자 선장 李씨는 선원들을 침실로 데려간 뒤 "1백만원씩 주겠다"며 협조할 것을 지시했다.

어부 생활 10년 이상인 선원들은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다. 선장의 지시를 따르지 않을 경우 직장을 잃는 것은 물론 극단의 경우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었다. 이때부터 태창호는 어선이 아닌 밀입국자 운송선이었다.

지난 7일 오후 당직근무를 서기 위해 조타실로 올라가던 崔씨는 밀입국자들이 숨어 있는 그물창고에 인기척이 없어 다른 선원과 함께 뚜껑을 살며시 열어봤다. 역겨운 냄새만 진동할 뿐 인기척이 전혀 없었다. 비상이 걸렸다.

창고에 있던 중국인 25명이 갑판으로 옮겨졌다. 인공호흡까지 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선원들은 갑판에서 술을 마셔대기 시작했다. 아무런 대화도 없었다.

물탱크에 숨었다 생존한 중국동포 11명과 중국인 24명도 이미 상황을 파악한 듯 공포에 질려 숨을 죽이고 있었다.

선원들은 "살 길은 이것 뿐이다. 책임은 내가 진다"는 선장의 말을 믿고 시신 25구를 한구씩 바다에 던졌다. 쌀과 소주를 바다에 뿌리는 약식 위령제도 지냈다. 그리고 여수항으로 돌아오다 해경에 전원 연행됐다.

여수=천창환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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