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갈로타 무용단 김희진 "서른 넷은 시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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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3면

강수진.김용걸.김지영 등의 스타들이 포진한 발레와 달리 현대무용은 대중화를 향해 갈 길이 아직 멀다. 그래서 프랑스의 장 클로드 갈로타 무용단에서 맹활약 중인 김희진(34)의 존재가 더욱 소중한지도 모른다.

"국내 최고의 테크니션 중 하나"(무용평론가 장광렬)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그녀가 세계무용축제의 초청으로 10일 내한했다.

갈로타 무용단은 12일 오후 8시 예술의전당에서 '마르코 폴로의 눈물'을 공연한다.내한 전 방콕.베이징.상하이 순회 공연 중이던 그녀와 서면으로 인터뷰했다.

갈로타 무용단은 그르노블 지방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단체다. 프랑스에서는 '국립'이라는 명칭을 쓸 수 있는 무용단이 10여개 있는데, 갈로타 무용단도 그 중 하나다.

이화여대를 졸업한 그녀는 3년 전 일본 시즈오카 퍼포밍 아트센터(SPAC)에 몸 담고 있던 중 객원 안무가로 온 갈로타에게 스카우트됐다.'거의 돈키호테''마맘'등 다섯 편을 공연했고,지금은 단원 중 최고 연봉을 받는 위치에 올랐다.

"갈로타는 프랑스 현대무용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일류 안무가예요. 탁월한 직관력을 지닌 사람이죠. 춤 추는 사람으로서 그와 일할 수 있다는 건 굉장한 기회예요. 대단히 섬세하게 지도하고요. 테크닉은 물론 자연스럽게 표현력이 흘러나오는 데 중점을 둡니다."

'마르코 폴로의 눈물'은 입단 후 첫 신작이자 '김희진'이라는 이름을 유럽 무대에 각인시킨 출세작이다. "모험가 마르코 폴로를 소재로 하긴 했지만 특정한 줄거리가 있는 건 아니에요. 이미지의 해체와 조합이라는, 전형적인 현대 무용입니다."

이 작품은 1시간15분 동안 쉬는 시간 없이 진행된다.

때문에 "다른 무용수들과 호흡을 맞추는 데 조금이라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는" 어려움이 있다. 지난해 리옹 댄스 비엔날레에서 공연됐을 때 작품에 대한 평은 엇갈렸지만,"김희진의 춤만으로도 충분히 볼 가치가 있다"는 게 무용계의 공통된 목소리였다.

그녀는 대기만성형 무용수다. 서른이 넘어서야 해외에 진출했고, 독일 부퍼탈의 피나 바우쉬 무용단에서 춤추는 김나영에 비해 매스컴의 조명도 훨씬 덜 받은 편이다.

"제 나이가 많다고 생각진 않아요. 현대무용은 힘과 기교만으로 되진 않아요. 연륜과 성숙함이 필요하지요. 육완순 교수 밑에서 스파르타식 훈련을 받았던 국내의 경험이 타향살이에서 좋은 밑거름이 됐던 것 같습니다."

프랑스 동료들에게 한국을 보여줄 수 있어 이번 내한이 특별히 기쁘다는 김희진. 동양인으로서 큰 키인 1백74㎝의 그녀가 뿜어낼 격정적이면서도 유연한 테크닉이 기대된다.

기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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