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척척 구부러지는 인형 만들기, 엄마가 간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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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21면

수정(4)이는 원래 유아 모델이다. 인형을 갖고 노는 아이의 모습을 찍기 위해 섭외했던 건데 수정이가 인형을 보는 순간 연기가 아닌 실제상황이 돼버렸다. [촬영협조=그랜드 하야트 호텔]

아이들의 가장 좋은 친구 인형. 그런데 이 친구는 팔다리를 뻣뻣하게 펴고 굽힐 줄을 모른다. ‘내 인형이 함께 무릎을 굽히고 앉아서 팔꿈치를 괴고 이야기할 수 있다면…’. 누구나 어렸을 때 한 번쯤은 이런 꿈을 꾼 적이 있다. 그런데 요즘은 이런 인형이 있다. 팔다리를 자유자재로 구부리고 사람처럼 관절을 움직인다. ‘구체관절인형’이다. 시트콤 ‘지붕 뚫고 하이킥’에서 해리의 품에 안겨 있던 그 금발의 인형이다. 개당 20만원이 훌쩍 넘지만 관심만큼은 아이·어른 할 것 없이 대단하다. 한데 이 인형, 집에서 만들 수도 있다. 아무리 빨리 만들어도 한 달 정도는 걸린다. 취미 삼아 짬짬이 시간을 내는 주부와 직장인이라면 완성까지 4~6개월이 걸린단다. 이 인형 만들기에 도전한 주부 이승희(36·서울 여의도)씨에게서 구체관절인형 만들기 도전부터 제작까지의 과정을 들어봤다.

글=서정민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shotgun@joongang.co.kr>

이승희씨는 3월 구체관절인형 공방에 등록했다. 아홉 살과 다섯 살 남매에게 엄마가 친구 인형을 만들어주고 싶어서였다. 그가 수소문해 찾아낸 공방은 서울 합정동 ‘판도라박스’. 서울 송담대 인형캐릭터학과에서 강의 중인 정양희(43) 선생의 공방이다. 이 공방의 일반인 대상 강좌는 1주일에 한 번(3시간), 한 달(4회) 수강료는 15만원이다. 여기에다 재료비 13만원 정도가 더 든다. 이씨는 지금까지 총 8회를 수강했다.

수업 첫날, 자신이 만들고 싶은 인형의 모습을 종이 위에 실제 사이즈로 그리는 작업을 했다. 차렷 자세의 인형을 그리는 일이라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는데 의외로 어려웠다고 했다. 전체적인 신체 비율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주로 모눈종이 도면을 이용해 얼굴 길이를 기준으로 7등신으로 할지 8등신을 할지 결정한다. 이씨는 키 60cm의 6등신 18세 소녀를 그렸다.

그 다음 과정도 만만치 않았다. 평면의 도면을 기초로 입체 모형을 만들어야 했다. 전문 용어로는 ‘심재’를 만드는 과정이다. 칼로 스티로폼을 깎아 형태를 만드는 조각 과정 같은 것이다. “머릿속에만 있던 인형을 실제로 만들려니 정말 어려웠어요.” 더욱이 심재는 완성될 인형 사이즈보다 조금 작게 만들어야 한다. 심재에 랩을 감고 점토를 붙여가며 인형의 진짜 몸체를 만들기 때문이다. 머리·몸통·팔·다리 부위를 따로따로 만드는 것도 번거롭다. 시간이 2~3일 정도 지나 점토가 단단하게 마르면 속에 든 심재를 없애야 한다. 이때 스티로폼을 깨끗이 긁어내려면 구멍이 많이 필요하다.

두 달이 지난 현재 이씨의 인형은 심재를 긁어낸 다음 팔·다리 등의 관절을 잘라 구를 붙인 상태까지 진행됐다. 이씨는 “이름처럼 구체관절인형이 되려면 잘라낸 관절의 한쪽에 점토로 만든 구를 붙이고 반대쪽에는 받침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씨가 60cm 길이의 인형을 집에서 공방으로 쉽게 옮길 수 있는 이유도 현재 인형의 관절이 모두 분해돼 있어서다.

이씨는 평소 제작 중인 인형을 집에 둔다. 짬짬이 점토를 붙이고 조각칼로 깎아내면서 섬세한 근육과 표정을 만들기 위해서다. “인형 한 채를 만드는 데 초보자는 평균 4개월쯤 걸린다는 말을 듣고 처음에는 나는 빨리 만들어야지 생각했어요. 그런데 실제로 하고 보니 마음이 달라졌어요. 시간이 좀 걸리더라도 완성도를 높이고 싶은 욕심이 자꾸 생겨요.” 이씨는 “예쁜 인형을 만들어서 딸에게 빨리 선물하고 싶은 엄마의 마음”과 “그래도 첫 인형인데 완벽하게 만들자는 초보 작가의 마음”이 갈등 중이라며 웃었다. “두 아이 모두 다음에는 자기랑 꼭 함께 만들자네요. 재밌고 신기한가 봐요.”

구체관절인형은

돌가루가 섞인 석소 점토가 기본 재료다. 석소 점토는 강도 면에서 지점토보다는 훨씬 단단하고, 포셀린(도자용 흙)보다는 약하다. 단단한 바닥에 떨어뜨리거나 벽에 부딪치면 깨진다. 플라스틱·고무인형처럼 맘 편히 휘두르며 놀기엔 부담스럽다. 하지만 다른 인형과는 달리 원하는 색깔로 표면을 채색할 수 있고 질감도 보송보송 부드럽다. 무겁지는 않다. 몸 전체가 비어 있기 때문이다. 각각 떨어져 있는 관절들을 연결한 3개의 고무줄이 동맥처럼 빈 몸통 안쪽을 채우고 있다. 시중에서 판매되는 구체관절인형은 대부분 우레탄 재질을 이용한 것이다.

만드는 과정

1 종이에 만들고 싶은 실제 사이즈의 인형을 그린다.스티로폼으로 머리·몸통·

팔·다리 심재를 만든다.

2 심재 위에 랩을 싼 후 점토를 붙인다.

3 점토가 단단하게 굳으면 송곳 등으로 속에 든 심재를 긁어낸다.

4 점토를 얇게 덧붙이면서 미세한 근육과 표정을 만든다.

5 팔, 다리 등 관절 부위를 자른다.

6 점토로 구를 만들어 끊어진 관절 한쪽에 붙인다. 그 반대쪽은 역시 점토를 붙여

움푹 들어간 형태의 구 받침을 만든다.

7 얼굴 안쪽에서 안구를 박는다.

8 머리·손·발의 안쪽에 철사를 박아서 고무줄을 걸 수 있는 고리를 만든다.

9 각각의 고리에 연결된 3개의 고무줄을 몸통 부분에서 한데 묶는다.

10 유화, 아크릴 물감 등으로 피부 톤과 색조화장을 칠한다.

11 가발을 고정시키고 의상을 만들어 입힌다.

TIP 인형 만들 때 ‘방울솜’ 써보세요

구름처럼 뭉실뭉실 넓게 퍼진 것이 ‘구름솜’이다. 구름솜 중 베스트 원면(두께 7㎜, 길이 32㎜)만 골라서 콩알만 한 크기로 동글동글 뭉쳐 놓은 게 방울솜이다. 원면의 조건이 다르면 방울로 뭉쳐지지 않는다고 한다. 그 때문에 부드럽기나 탄력 면에서 방울솜이 한 수 위다. 인형 속에 넣었을 때 어느 한 구석에서 뭉치지 않고 고르게 잘 퍼지기 때문에 겉면의 모양이 매끄럽게 잡히는 게 장점이다. kg당 평균 가격은 구름솜 6000원, 방울솜 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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